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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보통 및 평등선거




보통 및 평등선거





마르틴 크릴레 (Martin Kriele)

국순옥 역
 

『민주적 헌정국가의 역사적 전개』, 종로서적, 1983. 408~414쪽.




영국의 의회주의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자연법적 기반이 일단 다져지게 되자, 선거권 확대의 현상은 논리 필연의 당연한 귀결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선거권 확대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의회주의와는 생소한 여타의 제반 원리 원칙들이 아니라, 의회주의의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던 바로 그 논거들이었다. 국적 보유자의 권리주체성, “당사자 청문”의 원칙 그리고 특히 입법이라는 정치 과정에서 중립적 위치를 고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요구가, 즉 변호인과 결정권자의 동일성을 의회적인 차원을 넘어 선거인단에까지 확대시키라는 요구가 제기된다. 이와 같은 요구에 내재하는 설득력이란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비록 수백 년간의 투쟁 끝에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의회는 마침내 이와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물론 당시의 의회는 일부의 국민에 의하여, 즉 선거권 확대로 말미암아 선거상의 제반 특권을 상실하게 된 일부의 국민에 의하여 선출된 것이었다.

보수주의자들도, 선거권을 통해서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개인적 이익만을 앞세워 그들이 견지하고 있던 반대의 입장을 계속 밀고 갈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도 역시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시켜 줄 만한 논거가 필요하였다. 본래 선거권에 관한 당시의 제 규정은 선거권 부여의 요건으로 토지 소유, 동업조합의 자유회원 자격, 일정액 이상의 납세실적을 들고 있다. 부녀자와 미성년은 물론, 무산자, 임금 생활자, 원호금 수령자 및 기타 종속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선거권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국민은 개인 단위로 구성되지 않고, 가(家) 단위로 구성되었다. 가장인 남자만이 자유로운 신분을 향유했으며, 따라서 그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종속적인 지위에 있었으므로, 안으로는 가장의 명령권에 복종하고 밖으로는 가장 및 가장의 정치적 판단에 의하여 대표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세 동의 결의안과는 달리, 법률 적용의 대상은 가(家) 단위 또는 가장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실질적으로 이에 포함되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이, 즉 모든 사람은 입법에 대하여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동일한 선거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수평주의자(Leveller)”와 일부의 조합 교회파들은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을 요구하였으나, 그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양자를 동시에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여자, 임금 생활자 및 원호 대상자를 선거권으로부터 제외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전개하는 이론은 자연법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자연법적 이론 전개를 감안할 때 여자와 피고용자를 계속 선거권으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더 곤란하게 되었다. 누구나 다 법률의 적용을 받는 이상, 역시 누구나 다 법률에 대한 공동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선거권의 확대를 요구하는 주된 논거였다. 누구나 다 동일하게 법률의 적용을 받음으로써 누구에게나 다 평등 선거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인민협약(Agreement of the People)을 둘러싼 파트니(Putney) 논쟁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이와 같은 요구 사항에 대하여는 우선 다음과 같은 원리적인 이의가, 즉 자연법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원리적인 이의가 제기되었다. 즉 아이어톤(Ireton)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의 지배자를 선출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자연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그 내용이야 어떻든 바로 그 자연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가 목격하는 재화를, 예컨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이들을 자기의 생계에 이용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토지에 대한 자유 처분권을 가지며, 토지를 취득하고, 이를 경작할 수 있다.”

아이어톤은 자연법에 입각한 실정법의 비판과 자연법에 입각한 법의 파괴를 혼동하고 있었다. 당시에 문제되었던 것은 정치적 요구로서, 이것은 법률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할 것이었다. 자연법은 법 정책의 기준으로 봉사하였지, 법의 파괴를 선동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 후 자연법적 이론 전개는 이와 같은 혼동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스스로의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은 혼동을 반드시 부당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법에는 동태적인 요소가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정법이 자연법에 접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자연법은 결국 자기의 혁명적 관철력을 동원하게 된다. “지킬 것은 지키고, 자유롭게 비판한다”는 원칙은 의회제 헌정 국가에서만 정착을 보게 되었고, 따라서 의회제 헌정국가의 제반 제도하에서는 법 정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볼 때 비판과 복종은 상호조화의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상호제약 내지 확인의 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들 상호간의 관련성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즉 비판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를 막론하고 적극적 또는 소극적 저항권의 문제가 폭발적인 위세를 가지고 대두되는 데 반하여,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법 정책의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는 민주적 헌정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별다른 실천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원인을 들 수 있겠다. 즉 첫째, 불의에 의하여 촉발된 의사 표현의 자유는, 불의에 의하여 촉발된 격앙된 분개심을 진정시켜 주는 통풍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의사 표현의 자유를 통해서 입법자가 불의를 통찰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고된다. 끝으로, 의사 표현의 자유가 이미 상당 기간을 두고 존속해 온 곳에서만, 다음과 같은 신뢰의 기반이, 즉 과거에 있어서도 법 제도를 통해서 개선이 이루어진 바 있었고, 현행법이 별다른 거부 반응 없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현행법이 공개 토론에 의한 심사과정을 통해서 무난한 것으로 판정되었기 때문이라는 신뢰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뢰나 실정법의 자연법에의 접근 가능성은 자연법에 관한 일정한 관념을 전제로 한다. 일부의 국민이 자연법을 원리적으로 부정하는 경우, 이들은 여타의 국민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기대와 신뢰를, 즉 실정법이 언젠가는 자연법에 접근하게 되리라는 기대와 신뢰를 앗아가는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실정법과 자연법의 직접적인 대결이 불가피하게 되고, 혁명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이에 반하여 평등 선거권이라는 자연법적 요청을 승인하게 되면, 헌정 질서는 광범위한 정당성의 기반 위에 자리를 잡게 된다.

파트니 논쟁에서 선거권 확대의 반대 이유로 제기된 두 번째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도제, 원호금 수령자 및 피고용자는 타인의 의사에 종속되어 있다. 그 결과 이들은 그의 눈에서 벗어나지는 않을까 하고 늘 전전긍긍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선거권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논거는 물론 경청할 만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거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를 제기한 데 불과하다. 이와 같은 논거에 의하여 제기된 기술적인 문제는 후일 선거비밀의 보장을 통해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거권 확대의 반대 이유로 제기된 논거 가운데 결정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무산자와 비납세자에게 입법권을 부여하게 되면 유산자와 납세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즉 재분배, “무원칙한 평등주의”, 그리고 이른바 “평준화법(levelling laws)”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우려가 불안으로 발전하고, 심지어는 히스테리로까지 고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파트니 논쟁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리치 대령의 표현을 빌리면, “주인과 하인이 똑같이 선거권을 갖게 되는 경우, 로마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무산자의 독재가 수립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크롬웰은 이와 정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보통 선거권에 관한 본 규정을 시행하는 경우, 무정부 상태가 성립될 뿐만 아니라, 무정부 상태로 끝장을 보게 될 것은 명약관화할 필연의 이치라고 하겠다.”

위에서 방금 본 바와 같은 극단적인 논리 전개와는 달리, 이와 같은 우려 속에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불안이 표명되고 있다. 즉 분배상의 제반 부조리를 시정하는 정도를 넘어서 소유권, 계약의 자유 등과 같은 제반 법제를 폐지하게 된다면, 이것은 분배가 아닌 재분배, 다시 말하면 생산과 거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위한 제반 조건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재분배에 상당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복지 그리고 모든 자유의 기반이 허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와 같은 우려 속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따라서 경제적인 책임도지지 않는, 그 결과 경제 거래상의 제반 조건을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력에 대한 불신감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트니 논쟁을 계기로 전개된 이와 같은 근본 주제는 그 후 민주적 헌정국가의 역사를 관류(貫流)하고 있으며,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이 실시된 지 이미 오래고 그 무해성(無害性)이 입증된 오늘날에 와서도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새롭기만 하다.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을 시행하게 되면, 경제 및 복지의 기반이 파괴될지 모른다는 우려는 오늘날까지도 민주적 헌정 국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결과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한 시행을 보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 17세기 이후 진행된 제반 조건의 변화를 시인하여야 한다. 첫째, 의무교육이 보편적으로 실시된 결과 임금 생활자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필요 최소한의 정보도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산업혁명이 무산자 계급을 창출해 낸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임금 생활자들”은 자각적인 의식을 확립하게 되고 독자적인 판단력을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하여 대중들은 자유와 평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강화되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이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1791년의 헌법에 의하면 이른바 “유권자 시민”만이, 즉 25세 이상이고 3일간의 노임에 해당하는 직접세를 납부하는 프랑스인만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임금생활자는 명시적으로 선거권에서 제외되었다. 여자의 투표권은 당시에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에 관한 헌법상의 규정은 물론, 이를 개의(介意)하는 사람조차 없다. 약 2천 5백만 명의 프랑스인 가운데 약 1천 5백만 명이 선거 연령에 도달해 있었고, 그 가운데서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약 4백 50만 명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기관, 특히 국민의회는 전 국민의 대표로 행사하였다.

비록 시행은 되지 않았지만, 1793년의 헌법에 이르러 비로소 남자들만이라도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1795년의 헌법은 선거권의 문제를 입법자에게 일임하였고, 이에 따르는 입법조치에 의하여 투표권은 납세실적에 따라서 부여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이 대중의 의식 속에 다음과 같은 자연법적 사상을, 즉 누구나 다 평등한 정치적 자결권과 평등한 자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자연법적 사상을 심어 놓음으로써, 프랑스 혁명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사상은 19세기 내내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러시아의 경우 삼 등급 선거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었던 1850년의 헌법은 그 효력이 1918년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보통선거가 시행되기는 하였지만, 평등선거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즉 선거권이 납세액에 따라 구분되었다. 선거구의 모든 납세자는 납세액의 순서대로 선거인 명부에 기재되었다. 그리고 나서 납세액의 총계를 3등분 하였다. 첫 번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의 세금을 납부한 최고 납세자들이 도합 3분의 1의 투표권을 차지하게끔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경우 한 사람의 자산가나 공장주가 투표권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예도 흔히 있었다. 그 다음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의 세금을 납부한 사람들 역시 도합 3분의 1의 투표권을 그리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 사람들이 나머지의 투표권을 차지하게끔 되어 있었다.

독일의 경우 1849년 프랑크푸르트 제국 선거법이 품행 방정한 25세 이상의 모든 독일인에게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단 원호 대상자와 파산 채무자는 이로부터 제외되었다. 그러나 제국 헌법이 실패로 돌아간 결과 이 법률은 끝내 햇볕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북독일 연합의 헌법 그리고 이의 부속 법률로 제정된 선거법에 이르러 비로소 보통 및 평등 선거권이 실현을 보게 되었고, 그후 계속 시행되었다. 그리고 1919년 여자의 투표권이 새로이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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