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실시된 제48회 사법고시의 면접시험이 '사상검증' 논란을 불러 일으킨 가운데 면접시험에서는 최종적으로 8명의 불합격자가 나왔다. 8명 가운데 1단계 면접에서 '부적격자(26명)'로 분류돼 심층면접을 받았으나 결국 탈락한 사람이 7명이고 나머지 1명은 면접시험 미응시자이다.
한편 1단계 면접에서 '부적격'으로 분류되면서 '사상검증'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최종 탈락한 7명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적은 미국이다"라고 답변했던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번복했고, "북핵은 우리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 사람은 '사회적 의견의 다양성'과 '판검사 임용도 아닌데 불합격은 지나치다'는 점이 참작되어 구제된 듯 싶다.
면접시험에서 탈락한 사람 가운데 특이한 경우는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맞받아 치겠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한 사람이고, 그 이외에는 평이한 법률용어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경우로 알려졌다.
어쨌든 미응시자를 제외한 7명의 불합격자 수는 지난 10년간의 면접시험에서 단 1명의 탈락자만 있었던 점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이고, 사법시험 역사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니 비단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어쩐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간 면접시험 탈락자가 단 1명 밖에 없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면접시험에 올해는 무려 7명이나 탈락했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잠시 헷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둘 다 뉴스거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대를 떠올려 보자. '사법고시 면접시험'은 확실히 실질적인 사상검증 절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사회적 실천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반대로 사회적 실천을 했던 사람에게 '사법고시'란 기피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뉴스가 될 정도의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꼭 면접시험에서 사상검증을 하지 않아도 면접시험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상검증의 효과'를 발휘하는 시대였다.
그러다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시대가 변하면서 '짧은 과도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길거리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배신자 소리까지 들으며 사법고시에 도전했으나, '국가관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불합격되어 소송을 제기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들이 불합격한 이유는 실제로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가 문제된 것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사안이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여하간 이후 사법고시 면접시험은 점차 '형식적' 절차로 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법고시 면접시험에 관한 이 짤막한 역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문제를 제기해 준다.
하나는 그동안 ① 면접시험이 '실질화' 되지 못해 시험의 목적이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② 면접위원들의 주관에 따라 면접시험이 '불순한 수단과 기능으로 실질화'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문제는 우리가 향후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 될 부분이다. 면접시험에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발생했다고 해서 '면접시험' 자체를 엉터리이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법고시가 자격시험에 불과한 것이지만, 자격시험에 필요하고 적합한 범위 내에서는 면접시험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평가는 형식적이지 않은 '실질적 검증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관한 실질적 검증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두 번째의 문제와 결부된 것으로서 사법고시 면접시험의 실질적 검증 대상은 '법률지식의 실질적 활용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고시는 어디까지나 '자격시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라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사법시험은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가 자격시험'이므로 면접시험은 1,2차를 통해 확인된 이론적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실기시험'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밖에 법률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자질들을 부가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고 보지만, 그것이 막연하고 주관적인 심사기준에 의해 좌우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도 대체로 '사상검증'에 대한 논란이 주가 되고 있지만, 논란의 내용은 '사상검증' 그 자체라기 보다는 '사상검증 논란'을 통해 드러난 사법고시 '면접위원의 자질'과 '면접위원 마음대로인 심사기준'에 대한 불신이었다.
사실 이번 면접위원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야말로 '부적격자'이다.
도대체 '주적은 미국이다'라는 생각이 왜 사법고시 시험에 떨어져야 하는 정도로 문제가 있는 답변이란 말인가? 현대의 국제관계에서 '주적' 개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국회의원이나 판검사들이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미국도 주적이 될 수 있고,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현재 '주적은 미국'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참 우스운 일이다. 나는 그 면접위원에게 '고따구로 면접하라고 세금을 낭비했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다. 군대에서 신병들에게 정신교육하면서 면담하나?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해보고 싶다.
대한민국의 주적은 누구인가?
만약 '북한'이라고 생각한 분이 계시다면 아쉽지만 틀리셨다. 대한민국의 '주적' 개념은 '북한주민'을 구별하기 때문에 그냥 '북한'이라고 하면 '명백하게 틀린 대답'이다. '북한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괴뢰정권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 정도로 답변을 해야 정확한 답이다. 적어도 '북한정권'이라고는 해야 맞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군대에서 지겹도록 듣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용어사용이 명확해야 하는 법률가들을 뽑는 시험에 제시된 물음이니 적어도 이 정도는 엄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주적이 '북한'이라고 한 사람도 '틀렸다'고 해야 한다.
이런 해석이 '물음의 의도를 벗어난 억지'에 불과하다고 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대충 넘어가서는 안되는 '시험'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주적이 '북한'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선량한 북한주민'들까지 모두 '주적'으로 보고 있는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가? 그가 대한민국의 주적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북한괴뢰정권의 붕괴를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의 생명이나 안전도 무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떤가 말이다. 객관적이고 공평해야 할 법률가로서의 자질을 의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그 전에 '주적은 미국이다'라고 하여 '오답'을 이야기한 사람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부적격자'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들을 똑같이 부적격자로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 면접위원이야 말로 주관적이며 편협한 사고로 심사를 한 '부적격 면접위원'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맞받아 치겠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여 결국 불합격처리된 사람의 이야기는 차마 웃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사람을 불합격시킬 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과 답변만이 유일한 이유라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 주먹을 휘두르면 맞받아 쳐야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법률가는 일단 그냥 때리는 대로 맞고 나중에 고소를 하거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야 된다는 말인가? 그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우니 그것을 저지시키기 위한 자기방어적 대응을 당연히 해야 마땅한데 그를 불합격시킨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혹시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맞으면서 합의금이나 손해배상청구액을 높여야 하는 '노련함'이 없다는 것이 이유인가?
그가 설령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법허무주의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실제로 주먹질을 하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은 없다. 그가 주먹질을 한다면 사법고시 합격자가 아니라 판검사라 해도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므로 역시 문제될 것이 없다. 그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이유로 폭행사건을 잘못 처리할 가능성이 보였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질문은 그런 경우를 묻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도대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하여 사법고시에 떨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그 응시자는 솔직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가 조폭이 키운 조직원쯤 되었다면 그런 대답을 했겠는가?
내가 아는 선배 중에 변호사인 분이 있다. 그분은 수임했던 형사사건이 패소를 하자 봉변을 당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사무실 책상 근처에 '야구방망이'를 갖다 놓았다고 했다. 그 선배의 말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기 때문"이었다. 현직 변호사도 이러한데 그 응시생의 답변이 잘못되었는가? 보통 사람이 '흔히 하는 대답'이 아니라 조금 다르게 대답했다고 해서 그게 불합격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면접위원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저 답변 하나만으로 불합격 처리를 할 수는 없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그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다른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정말 그 응시생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조차 이해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오히려 응시생보다는 그가 합격한 사법고시 1차와 2차시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웃지 못할 상황으로까지 돼 버리고 만다.
여하간.
이런 식이라면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인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해도 사법고시에 떨어질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떨어질 것이고, '사법개혁'을 이야기해도 떨어질 것이다. 아마도 다음 사법고시를 대비해 각 고시학원에서는 심층면접대비 핵심 정신교육 강의가 개설되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더, 면접시험이 면접위원들의 재량일 뿐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하는 법무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하다못해 면접위원들에 대한 면접부터 제대로 좀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보론 ]
* 이 글의 댓글을 통해서 'Gmt'라는 분의 고마운 제보가 있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여 탈락한 응시생에 대한 비난이 일자, 그가 면접과정에서 겪었던 일의 내막을 전해 들은 친구가 사실을 밝히고자 올린 글로 보인다. 정확한 정보인지에 대한 확인을 해드릴 수는 없지만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그 응시생의 친구가 올린 글 중에서 사건의 내막에 관한 부분만을 옮긴 것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했다는 건 맞아요. 그렇게 대답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법대 수업을 듣고 사법시험을 준비한 사람이 곧바로 그런 대답을 했겠습니까?
저 질문 원래는 형법상의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을 물어본 거였습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요건이나 정당화사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만약 누가 지나가다 치면 어떻게 하겠느냐 물어보니까 맞받아쳐서 싸우는 건 정당방위가 되지 않으니 도망가는게 낫지 않을까요란 대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도망가지 못한다면이라고 하니까 그 때는 맞받아쳐서 싸울 수 밖에 없겠죠, 그 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울테니까요라며 웃으며 답했답니다.
이 친구 저 질문이 마지막 심층면접에서 나왔다던데, 저기까지 어떻게 가게 되었는가도 빠져있더군요.
처음 질문이 검찰의 법적지위였답니다. 질문자는 검사였다는데, 순진한 이 친구가 그냥 검사가 원하는 답변인 사법의 한 주체이다라던가 준사법기관이다라고 말을 했으면 되었는데, 평소 자기생각대로(혹은 생각이 안났을수도-_-있겠군요) 수사기관이다라고 대답했더랍니다. 그 때부터 완전히 찍혀서 엄청나게 갈구더랍니다. < 전문보기 >
만약 이 글이 전하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정말이지 심각하다. 면접위원이었던 검사, 그를 위촉하고 '판단은 면접위원의 재량'이라며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는 법무부 관계자, 응시자를 직접 취재하여 보다 정확한 기사를 내보내지 못한 언론들은 모두 튀어나와 대가리라도 박아야 할 일이다.
그 응시생은 모든 면접과정에서 틀린 말을 전혀 하지 않았고 충분한 답을 했다.
1단계 면접에서 검찰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물음에 '검찰은 수사기관'이라 했는데, 그럼 검찰이 수사기관이 아니면 대체 뭔가?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니 '주권자'나 '최고통치기관'이라도 되나? 수사권 경찰한테 넘기라고 하면 마치 '수사의 화신'들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막상 니들은 수사기관이라고 하니까 '수사는 천한 것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본심이 고개를 들었나? '수사지휘기관'이라 하면 좀 기분이 나았을려나?
검찰을 가볍게 여긴 죄로 심층면접에 끌려간 이 응시생은 거기서도 질문의 의도에 맞게 충분히 적절한 대답을 했으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면접에서조차 전혀 틀린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왜 불합격이란 말인가? 나는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이런 일을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한번 듣고 싶다. 면접위원이었던 그 검사는 응시생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사법기관'이 되어 '검찰경시죄', '불경죄', '괘씸죄', '미소죄' 등을 적용해 그를 '응징'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대한민국 건국이래 또는 사법고시 역사상 가장 재수 없는 일로 꼽힐 만한, 험한 꼴을 당한 이 응시생에게 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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