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사법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응시생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여 심층면접에서 불합격된 사건을 전하는 언론보도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기존의 언론보도가 잘못된 것임을 전하면서 그 응시생이 탈락한 진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올해 사법시험 면접에서 한 응시생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말해 탈락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심층면접에 심사위원으로 들어간 한 면접관이 3일 밝힌 진실은 이렇다. 이 응시생은 1단계 면접에서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깝다’라는 뜻의 ‘법원권근(法遠權近)’이라는 사자성어를 대답, 심층면접에 회부됐다. 법률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질문 내용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심층면접에서는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에 집중적으로 질문이 쏟아졌다. 심층면접은 고위 판·검사 2명, 법학과 교수 2명, 심리학과 교수 1명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무려 50분 동안 수많은 문답이 오갔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질문 중 하나가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이유없이 주먹을 휘두를 경우 취할 수 있는 적합한 행동을 말해보라”는 것. 정답은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력구제’ 등 3가지다. 이 응시생은 이중 주먹으로 맞받아치는 ‘정당방위’ 하나만 대답했다. 면접관은 “‘정당방위’ 답변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결코 틀린 답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응시생을 탈락시킨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고 한다. 이 응시생은 시종 “앞으로 법률가가 되면 우리 사회 양극화·불평등 현상을 해결하겠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면접관은 “여러 답변을 종합해볼 때 그 응시생은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법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부적격자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법원권근’을 주장한 이 응시생은 사법시험 성적이 100위권대로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2006. 12. 4.)
실망스러운 보도
잘못된 보도는 어디까지나 '없어야 할 일'이지만 동시에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잘못된 보도가 있을 경우 뒤늦게라도 이를 바로 잡는 일과 그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적절하게 구제하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관한 새로운 보도는 이 '바로 잡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다. 바로 잡기는 고사하고 새로 내놓은 보도 자체도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 기사는 '바로 잡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단순히 '면접관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물론 면접관을 인터뷰 해서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사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보도를 최대한 바로잡아서 진실에 보다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기자에게 있었다면, 단순히 면접관의 이야기만을 듣고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언하면서도 그 면접관의 말에 기대어 자신의 책임은 결국 회피하고 마는 이런 식의 보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기자에게 자기가 작성한 기사를 스스로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내 생각에 이 기사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면접관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 밖에는 없다.
여하간 어느 면접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사건의 모습을 간략히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면접에서 질문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응시생이 답변에서 "법원권근"을 이야기 하자 "법률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심층면접에 회부되었다. 심층면접에서 그는 결코 틀린 대답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법률가가 되면 우리 사회 양극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등 여러 대답을 종합해 볼 때 면접관은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고, "법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불합격시켰다.
의문점
여기서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의문들이 생긴다.
1단계 면접의 질문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면접관은 왜 그 점을 밝히지 않았는지), "법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됐다"는 결론은 면접관들의 일치된 견해였는지, 혹 다른 견해를 가진 면접관이 있었다면 그의 의견은 어떤 것이었는지, 질문과 답변의 전체적인 논리적 흐름은 어떤 것이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나는 이런 의문점들이 밝혀지지 않고서는 인터뷰를 한 그 면접관이나 기자가 '진실'이라고 하면서 전하는 내용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면접관에게도 주관적인 '자기정당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며, 기자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을 대하는 태도'가 판단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런 의문점들을 무시하고 인터뷰 내용이 '신뢰할 만한 진실'이라고 전제한다고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장 먼저 "법을 대하는 태도"가 변호사 자격을 얻지 못할 중대한 판단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언듯 생각하기에는 일리가 있다. 비유하자면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의사 면허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설득력이 있듯이 말이다. 법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 법률소비자나 사회에 불측의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의사면허시험에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검증의 기준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기준의 하나로 적용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 기준의 실효성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의사 면허가 주어지는 자 중에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결함이 있는 자들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법률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의 기성 법률가 집단 전체가 "법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법현실에는 무관심하고 과도한 수임료나 전관예우의 혜택을 쫓는 자들에게 '법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지녔다고 할 수는 없다.
이렇듯 기성 법률가 집단의 '법에 대한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현실에서 사법시험 면접응시생 1000여명 가운데 법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는 단 1명을 걸러냈다는 것은 몹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단 1명을 제외하고서는 나머지 응시생들은 법을 대하는 태도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인가? 면접관은 자신이 합격시킨 자들 중에 '공공의 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단 1명의 절대확실한 '문제아'를 발견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법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이유이지만 그것이 공정하고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고 오히려 그런 기준을 애써 적용한 '변별의 목적'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법원권근'이 문제가 있는 인식인가?
그러나 설령 그 면접관이 적용했던 대로 "법에 대한 태도"를 판단근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여전히 남는다.
면접관이 "여러 대답을 종합했다"고는 하지만 기사에서 전하는 응시생의 답변은 면접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표적인 대답만으로도 그 응시생에게 '법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법원권근"이라는 말은 법을 경시하거나 조롱했다기 보다는 법보다 권력이 가까운 현실, 즉 법이 권력 앞에 무시당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에 가깝다. 바꾸어 말하자면, '법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그렇게 말한 것을 '정의롭다'고까지 할 일은 못되더라도 도리어 '법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억울한 누명'일 수 있다.
만약 "우리 사회는 권력이 법 앞에 복종하는 사회이다"라고 대답한 응시생이 있다면 오히려 그 응시생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그는 '법을 대하는 태도' 이전에 '사회를 보는 눈'에 결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깝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말이다. 그 말을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단지 바로 잡아야 할 문제를 이야기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응시생이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까우니 법을 실현하기 보다 장차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에서 그 말을 했다면 면접관의 처분은 정당하다. 권력을 얻기 위해 법을 수단으로 삼을 것이므로 그런 경우는 법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 응시생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어떤 부당한 권력 행사보다 법이 더 가깝고 준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니 법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면접관의 말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가가 될 수 없는가?
면접관은 응시생의 여러 대답을 종합해 해당 응시생이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역시 "법에 대한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려 불합격 처분을 했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면접관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면접관은 아마도 한스 켈젠(Hans Kelsen)이 주창한 순수법학파의 전도사라도 되었나 보다. '순수법학'이 법학에 공헌한 바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순수'함에 대한 동경이 지나쳐 결국엔 그것이 정치적인 입장이 된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본질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를 정치로부터 순수하다고 믿는 딱한 사람들이다. 일종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해도 좋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도대체 그 면접관은 왜 정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률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혹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수많은 법률가들에게 환멸을 느껴 더 이상 법률가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심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그의 판단은 올바르지 못했다.
나는 면접관이 그에게 주어진 재량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는 면접관의 재량은 응시생이 법률가(변호사 자격취득)가 되기에 적합한가를 판단하기 위한 범위에 한정된 것이지, 그가 법률가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면접관의 재량을 넘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로까지 보인다.
면접관의 말대로 정치를 하기 위해 법률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는 정치를 하는 법률가들의 변호사 자격도 박탈하거나 정지시켜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정치세력이냐를 떠나서 그는 모두에게 '바보' 소리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직 단 1명의 사법시험 응시생에 대해서만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가?
현대판 홍길동
새로운 보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전에 썼던 글에서 밝힌 것처럼, 해당 응시생에 대한 주관적인 악감정이 면접관에게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 면접관이 밝히는 판단기준과 그 응시생의 답변을 종합해 볼 때 면접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법률가가 되어 나중에 정치를 하건 말건 면접관이 무슨 상관을 한단 말인가. 혹시 자신과는 정치적 입장이 달랐기 때문인가? 생각할 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법원권근'의 사회를 '법원권근'의 사회라 하지 못하고, 정치를 하고 싶은데 정치를 하고 싶다 말하지 못하는 그 응시생의 불행한 운명을 보고 있자니, 이번 사건의 응시생을 '현대판 홍길동'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