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을 개혁해야 국헌과 정의가 산다
곽노현
(방송대, 법학)
미디어 오늘, 1995. 8. 15
군사독재시절의 권부집단을 비아냥거리는 말로 '육법당'이라는 용어가 있었다. 육사출신 정치군인들과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한 서울법대출신 법조인들의 야합체인 육법당의 법조측 인사들은 모두 검찰출신이라는 게 특징이었다. 이들은 집권당과 정부의 요직, 특히 청와대 사정비서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안기부장 등을 두루 차지하면서 군사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 헌신하였다. 이들은 한때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자신들의 친정인 검찰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부정하고 검찰을 정보기관의 시녀로 만드는 국헌 및 조직문란 행위에까지 앞장선 바 있다. 어쨌건 이들 육법당의 세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군사독재정권의 인적 청산은 곧 육법당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정도였다. 그러나 정권이 육법당의 손을 떠난 오늘날에도 육법당 검사출신들의 정권내 입지와 정치적 위상은 육법당 군인출신들의 그것과 달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민정부가 검찰개혁에 실패한 탓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오랜 군사독재와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불법과 편법문화가 판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정상적인 법치사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기본개혁이다. 특히 몇차례의 군사쿠데타로 문란해진 국헌질서와 부정비리로 흐려진 국법질서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과 금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법과 정의를 집행하는 민주검찰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요체는 그동안 정권에 예속된 채 반법치적 결정을 일삼은 정치검찰의 혁파에 있다. 즉, 과거 군사정권 밑에서 체제와 정권유지의 명분 아래 법과 인권, 그리고 공익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대표적 정치검사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특별검사제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검찰개혁의 내용이 된다.
5.18내란주동자들에 대한 불기소결정 및 나중에 번복되긴 했지만 전직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설에 대한 불수사방침천명 등 최근의 검찰행태는 검찰개혁의 당위성, 곧 검찰개혁이 없이는 국헌과 국법이 살아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국헌질서는 국가의 각 기관이 헌법의 정신과 원칙에 따라 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 비로소 제대로 서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헌수호의 막중한 책무를 맡고 있는 검찰로서는 무엇보다도 헌법기관들의 권력형 범죄행위를 엄격히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헌법은 검찰에 대해 내란혐의가 있을 경우 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소추, 단죄할 것을 명령한다. 이렇듯 추상같은 헌법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검찰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한편 통상의 국법질서는 일반적으로 검찰이 약자를 관용하고 강자에 엄격한 법집행을 할 때 비로소 제대로 서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검찰이 재벌 등 부자에게 관대하고 빈자에게 엄하게 구는 등 계급사법의 모습을 보일 때, 법은 더이상 존중되지 않는다. 일반국민들이 보기에 법이 힘있고 끗발있는 자에게 미치지 못할 경우 법은 조롱과 불신, 회피와 위반의 대상이 될 뿐이다. 법은 강자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법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권력이나 금력이 법을 타고 앉기 쉬운 곳, 바로 그곳이 법의 생사가 걸린 지점이다. 그곳은 또한 검찰의 생사가 달려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검찰이 이 자리에서 맥없이 주저앉으면 힘이 곧 정의로 행세하며 권력집단의 음모와 편의가 법의 자리에 올라앉는 법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랫동안 이러한 상황을 경험해왔다. 검찰개혁은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개혁과제다.
이렇게 볼 때 검찰개혁은 모든 법치개혁의 토대이며, 특히 사법개혁의 단초를 이룬다. 그럼에도 김영삼정권의 사법개혁은 검찰의 중립성과 사법권독립이라는 오래된 핵심중추를 비껴가면서 법조학제개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검찰개혁의 전망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우선 검찰이 내부적으로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권부의 사법간여에 대해 간간이 저항과 자성의 소리를 내는 법원과 달리 검찰 내부에서는 지금까지 한번도 별다른 자성의 소리나 저항의 몸짓이 없었다. 더욱이 검찰은 조직과 의식 면에서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의식적으로 군대를 모방해왔다. 위계주의와 연고주의가 지배하는 것은 물론 위하적 언사에 폭탄주가 판치는 것까지도 그대로 군을 빼닮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권차원에서 검찰개혁이 시도될 전망도 별로 없다. 검찰에 대한 구조적 개혁을 하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친데다 현재 진행중인 사법개혁의 중심 역시 법원개혁이 아니라 법조학제개혁으로 국한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국민들이 직접 검찰개혁운동에 나서야 할 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유선무죄 무선유죄'라는 탄식 반, 비아냥 반의 조어가 더이상 공감을 얻지 못하고, 강물처럼 모든 이를 시원스럽고 이롭게 하는 법의 지배가 확립될 그날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을 때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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