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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병창의 명인' - 명창 오태석 선생을 기리며


국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 나로서는, 국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서운하고 아쉬울 때가 많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고등학교 때 친구 하나를 제외하고는 국악을 함께 듣고 이야기할 사람이 내 주변에는 단 한명도 없기 때문에 가끔 혼자 국악을 듣고 있으면 '외톨이'나 '희한한 녀석'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전쟁을 전후로 태어나신 부모님 세대조차 국악에 관심이 없으시니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각주:1]

사정이 이러하니 '가야금병창의 명인 오태석을 아시나요?'[각주:2]라는 물음이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하게 들릴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면 후손들이 아끼고 기릴 만한 뛰어난 명인이 그가 살아 있을 때 받았던 천대보다 더한 냉대를 후손들에게 받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나는 이런 모습의 망각과 무관심이 '우리 삶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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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2005『낙안읍성』(송갑득)

사실 국악전공자라면 모를까, 그냥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오태석'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심각하게 잊혀져 가고 있지만,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쉬워 할 것이 아니라, 그래도 그를 기억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낄 일이라는 생각 말이다. 더욱이 뜻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언제든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한 부족하나마 삶의 흔적도 엿볼 수가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명창 오태석 선생(吳太石, 1895-1953)은 전남 낙안의 무인(巫人) 집안에서 출생했다. 그때만 해도 무인이나 예인이나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나, 무인에 대한 천대가 더 심했던지 그는 예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아버지 오수관 선생은 가야금산조의 명인이었던 김창조(1865-1929) 선생의 제자였으면서 이미 가야금병창에서 이름을 알렸던 분이었으니, 아버지로부터의 가르침과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오태석 명창은 박덕기ㆍ송만갑 선생으로부터 각각 가야금산조와 판소리를 전수받았다.

그런데 가야금산조와 판소리를 전수받은 오태석 명창을 '가야금병창의 명인'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답은 '가야금병창에 뛰어났기 때문'이겠지만, 이 물음은 국악에서 가야금병창이 차지하는 위상과 그것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오태석 명창의 노력을 알기 위한 것에 그 의미가 있다.

가야금병창[각주:3]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이 가야금을 연주하며 소리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장구의 반주도 곁들여진다. 이때 '소리'란 기존의 단가나 판소리 중의 한 대목, 또는 민요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굳이 표현하자면 '정통국악'과는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와 같이 기악이면 기악인 것이고, 판소리와 같이 성악이면 성악인 것이지, 기악과 성악을 병행하는 것은 기악과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 각각 '덧재주'로 선보이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즉 가야금병창은 '판소리나 가야금산조의 아류'로 여기는 것이 국악계의 일반적이며 오래된 인식이었다.[각주:4]

여기에 오태석 명창을 '가야금병창의 명인'으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오태석 명창 이전에도 가야금병창을 하는 이름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특별히 오태석 명창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가야금병창만을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명창이었기 때문이다.[각주:5] 더불어 오태석 명창은 가야금병창에 있어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며 대중적 인기를 확산시키면서 동시에 가야금병창의 음악적 발전에도 기여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안숙선 선생님이나 강정숙, 강정렬 선생 등은 가야금병창에 있어 모두 10여년 전에 작고하신 박귀희(1921-1993)ㆍ정달영(1922-1997) 선생에게 전수받은 분들인데, 박귀희ㆍ정달영 선생이 바로 오태석 명창의 가르침을 받은 가야금병창의 전수자들이었다.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이, 오태석 명창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분의 삶을 그려보면 즐거우면서도 안타깝고 다정하면서도 안쓰럽다.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깊고 탁월한 소리에 울고 웃는다. 오태석 명창이 활동한 전성기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대였다. 나라 잃은 설움에 탄식하면서도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을 그 시대에 오태석 명창의 소리는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우리 민족의 고운 정서를 일깨워주는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국악 가운데에서도 나는 특별히 가야금병창을 좋아한다. 내 음악적 지식이 미천하여 가야금병창이 갖고 있는 음악적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기악곡처럼 추상적이지 않고, 다른 성악곡처럼 지나치게 길거나 산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야금병창은 기악과 성악, 두 가지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단점을 극복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여하간 나는 지금의 국악인들이 들려주는 가야금병창도 자주 듣는다. 원로이신 명창 안숙선 선생님의 가야금병창도 참 좋아하고, 젊은 숙명가야금연주단의 그것도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오태석 명창의 소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보통 '진정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이다. 가령 심봉사가 곽씨 부인을 안장하고 돌아와 탄식하는 장면을 노래하는 부분을 들으면 이것이 소리꾼의 소리인지, 진짜 심봉사의 탄식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그런가 십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여하간 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예술인으로서 그가 얼마나 고뇌하고 노력하며 살았을지 느끼게 해준다.

한편, 오태석 명창은 가야금병창 뿐만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창극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사람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국악인들 사이에서는 아류로 취급받던 가야금병창을 주로 하면서도 판소리 역시 당대의 명창들과 견주어 부족함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의 인용문은 박녹주 명창이 어느 대담에서 그를 평가한 부분이다.


"명창 오태석은 특히 남의 흉내를 잘냈고, 기지(機智)가 남달리 뛰어 났었다. 연극에서 말은 하지 않고 몸짓과 얼굴 표정만으로 하는 무언극(無言劇)으로도 관중을 울리고 또 웃기기도 하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연기 배우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 당시 가야금병창의 최고봉이라는 칭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익살스러운 재담과 표현 동작으로 인하여 관객들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명창이기도 하였으며, 오태석은 한쪽 눈으로 웃고 또 다른 쪽 눈으로 울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각주:6]


  1. <FONT color=#0000ff>우리들의 '부모 세대'는 국악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막연한 오해이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보다는 더 친숙하게 느끼겠지만 전쟁 전후로 출생한 부모 세대가 국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분들의 성장과정에서 국악의 실상은 그 이전의 천대받던 시대보다도 더 설 자리가 없는 최대의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악인들의 회고에 의하면, 특히 개발독재의 시대에는 젊은 사람이 국악을 하면 '미친놈', '정신나간 놈'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FONT> [본문으로]
  2. <FONT color=#0000ff>「</FONT><FONT color=#0000ff>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오태석 명창에 관한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를 뒤늦게나마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비록 그 내용은 잊혀진 명인에 대한 너무나 간략하고 쓸쓸한 기록이었지만 말이다. 서정일, "<A h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50385" target=_blank>가야금병창의 명인 오태석을 아시나요?</A>",「오마이뉴스」, 2005. 4. 20. </FONT> [본문으로]
  3. <FONT color=#0000ff>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1968. 12, 21. 지정. 가야금병창의 기원과 전승과정, 아울러 오태석 명창의 당대 활동상에 관하여는, 정명희,「오태석의 가야금병창 활동에 관한 연구」, 용인대 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참조. 이 논문은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이미지 형태로 열람ㆍ인쇄할 수 있다.</FONT> [본문으로]
  4. <FONT color=#0000ff>정명희, 위 논문, 1~2쪽 참조.</FONT> [본문으로]
  5. <FONT color=#0000ff>다만, 오태석 명창 이외에도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이소향이라는 분이 있었지만, 1930년대 말 은퇴 이후 완전히 음악계를 떠났다고 한다. 정명희, 위 논문, 2쪽 참조.</FONT> [본문으로]
  6. <FONT color=#0000ff>이중훈, "오태석 명창의 가야금병창 사설에 대한 고찰",『한국음악사학보』(제11집), 한국음악사학회, 1993. 185~186쪽. 정명희, 위 논문 20쪽에서 재인용.</FON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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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tzky at 2007/01/15 13:10  r x
국악에 관심이 부족한 넘 또 한 명 있어 신고합니다...;;;
88년 올림픽 진행되던 해였던가요, 마당놀이 보러 정동 MBC를 찾았다가 두레패의 사물놀이를 접한 뒤로 사물놀이의 매력에 빠져 김덕수패(80년대 김용섭, 김덕수, 최종실, 이광수로 뭉쳐진)와 그 패가 깨진 이후의 패들까지의 음반을 한 장씩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악 장르에 대해서는 친해지질 못하는군요.
BlogIcon fides at 2007/01/19 05:01 x
사물놀이가 매력이 있고 저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공연장이 아닌 그냥 음반으로 계속해서 듣기에는 한계가 있더군요. 중고등학교 때는 듣기도 많이 듣고 배우기도 했는데, 좋아하는 건 변함이 없어도 즐겨 듣지는 않는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가끔 영상을 접하면 그거나 좀 보구요. 저도 국악전반을 폭넓게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야금병창은 참 좋아하고 자주 듣습니다..^^
BlogIcon 지니예 at 2007/08/13 23:31  r x
사물놀이 김용섭이아니고 작고하신 김용배선생이네요.. 훌륭한 , 영웅같은 존재들로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잇어요. 예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가야금병창도 매력있는 음악이지요.. 기악과 성악이 어루어진 독특한 형태의 단아한 음악으로
향사 박귀희선생님의 공헌으로 안숙선명창에게 전수되어 지금까지 그 맥을 잇고 있어요..
가야금병창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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