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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근 교수의 기고문 "전철련 처리에 달린 용산 참사"에 대한 비판
    Essay 2009. 1. 2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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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 퇴근길, 문화일보를 집어 들고 나와 전철에서 읽던 중 강경근 교수의 기고문이 눈에 들어 왔다. 법학을 공부한 터라 이번 용산 참사에 관하여 헌법학자의 시각은 어떨까 궁금하여 주의깊게 읽었다. 기고문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①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② 이제는 헌법국가의 정부와 법에 무력(폭력)으로 저항해온 단체들을 근절해야 하며, ③ 그러기 위해 전철련을 본보기로 삼아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나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에서 강경근 교수를 비난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 분에 대해 단정같은 것을 내릴 생각은 없다. 단지, 내가 가진 생각과 의문을 제시해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1. "한국 법치주의의 비극"에 대한 견해

    강 교수는 한국 법치주의의 비극이 "법은 존재하되 그 법을 집행하는 정부는 실종된 현실에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말의 뜻은 강 교수가 곧바로 설명하고 있듯이 "자기에게 불리하면 국회에서 의결돼 시행중인 법이 있어도 이를 '악법'이라 하면서 헌법국가의 정부와 법에 저항"하는 존재(단체)가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강 교수가 말문을 열었던 첫번째 표현만으로 보자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정치적 입장에서도 설득력이 있다. 이를테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현실, '법은 멀고 권력은 가깝다'는 '법원권근(法遠權近)'의 현실에 딱 들어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법은 존재하되 돈과 권력이 법을 무시하고 그 법을 집행하는 정부는 실종돼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면 법을 집행해야 할 자들이 법을 무시하거나 어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법치주의의 비극'은 후자에 더 가깝지만, 강 교수가 기고문에서 지적한 경우도 비극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전철련 같이 '빨갱이'과(科)에 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헌법국가의 정부와 법을 친북좌파 정권이라 하며 쿠데타라도 일으킬 것처럼 군복 입고 나오는 '보수꼴통'과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어야 오해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두 과가 모두 법치주의의 비극이라는 게 내 견해다. 모두가 지켜야 할 법이 있음에도 그 법을 우습게 어기는 경우를 '법치주의의 비극'이라 하지 않으면 무어라 하겠는가. 강 교수의 지적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을 가져 본다. 어떤 비극이 더 본질적일까? 어떤 비극이 더 심각한 비극일까? 헌법국가의 정부와 법에 저항하는 비극일까? 아니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원권근'의 비극일까? 나는 당연히 후자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전자는 '단체'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법의 이름으로 진압이라도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오히려 법과 체제의 이름으로 쉽게 옹호되거나 조용히 묻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에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비극적이다. 법치주의는 누구나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지만, 특별히 권력자, 특권층, 지배계급도 똑같이 그래야 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건시대의 왕이나 귀족, 성직자와 같은 특권계층도 예외 없이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가 등장한 이유다.

    나는 이번 용산 참사에서도 법치주의의 본질적 비극은 있다고 본다. 용역깡패처럼 돈이나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은 법을 지켰을까? 또 경찰들은 법을 제대로 지켰을까? 만약 경찰이 법을 어겼다면 그들도 예외없이 처벌을 받을까? 이번 참사에 대해 정치권력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을까? 법치주의를 무시해온 전철련이라는 단체에 대한 강 교수의 지적에 동의를 하면서도 그의 주장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한국 법치주의의 본질적 비극을 놓아 둔 채 현상적 비극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강경근 교수의 눈을 가리고 있는 '법실증주의'라는 이름의 눈가리개

    강 교수는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악법과 무법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런 용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없다고 하며, 눈가리개를 벗어야 한다고 한다. 나 역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동의할 수 있음에도 사실은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고 느낀다.

    한 가지 강 교수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추측해 보건대 기고문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았을 때 그가 주문하는 것은, 수사기관과 사법부에 의한 준엄하고 철저한 심판이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다. 그런 철저한 심판만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까?

    전철련이 법을 어긴 행위를 덮어두자는 말이 아니다. 법을 어긴 자가 있으면 그게 누구든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단지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강 교수가 말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에는 사회적 갈등과 문제현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에게 실망하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학자이므로 법실증주의를 견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기고문만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법실증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생각이다.

    법학자를 포함한 법률가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법실증주의 뿐만은 아니다. 대학시절 어느 법철학 교수님으로부터 '자연법사상과 법실증주의'에 관한 아주 의미 있는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규범을 위해 법실증주의를, 멋있는 법을 위해 자연법 사상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강 교수에게 묻고 싶다. 용산 참사는 오직 전철련의 잘못일 뿐인가? 이번 사태에서도 법을 위반한 자들은 모두 처벌받아야 한다. 강 교수가 기고문을 통해 촉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법의 적용과 집행이 공평하고 정당한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3. 법학자에게 기대되는 노력의 결여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학시절 읽었던, 어느 형법학자가 쓴 소논문 하나가 떠올랐다. '화염병법의 폭력성'이라는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수년 전 안타깝게 돌아가신 故 김순태 교수의 글이다.

    그 글에서 인상 깊었던 논리는, '폭력'은 '지배폭력'과 '저항폭력'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 투쟁을 벌였던 우리 사회에서 '화염병'은 지배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저항폭력이었다는 것이다. 폭력은 폭력이지 저항폭력은 뭐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소한 논리가 아니다. '정당방위'가 바로 그와 같은 논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염병 투척이 정당방위라는 말은 아니다. 실정법이 있으므로 처벌의 대상이지만, 학문적으로 그게 끝이라면 법학자들은 그다지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법학자가 단순히 '실정법 해설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강경근 교수의 글에는 문제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과정을 학자로서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해석하려 하기 보다는 마치 일방적으로 사건을 심리종결하고 선고하듯 하고 있다. 강 교수가 경찰청 소속이었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법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인식되는 사회, 배우지 못하고 돈도 권력도 없으면 도무지 법이 법 같지가 않은 사회에서, 갈등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부르짖는 '철저한 법 집행'은 그 자체가 '지배적 폭력'으로 인식된다. 법학자라면 이런 인식에도 대답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4. 전철련의 책임과 강 교수의 성급한 판단

    정치적이든 법적이든 전철련은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진실에 대한 규명없이 이번 사태의 책임이 모두 전철련에 있는 것처럼 두루뭉술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전철련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설령 경찰에 의한 잘못이었음이 드러난다고 해도 전철련은 결코 씻을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이 있음을 느껴야 한다.
     
    일반 철거민이 아닌 전철련 집행부에 대해서는 그동안 운동권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전철련은 자신들에 대한 그 어떤 쓴소리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비판적 기사를 쓴 진보언론(월간 말)에 대해서도 폭력을 행사한 전력이 있다.

    법적 판단을 접어 둔다면 전철련은 이처럼 무모한 희생을 만들어 낸 원인이 결국 자신들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당한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해온 결과이다. 강 교수가 기고문을 통해 언급한 모든 사건이 오직 전철련의 책임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전철련이 문제가 있는 조직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전철련이 문제가 있는 조직이라 해서 이번 용산 참사에서 그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참사에 대해선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진실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전철련에 대해선 나도 강 교수만큼이나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그것으로 법적 판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강 교수의 글에 대한 실망은 그런 성급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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