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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에 담긴 공화주의
    Essay 2009. 1. 29. 08:17

    아침에 담배를 피우며 조선일보를 첫장부터 넘기며 보던 중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2009 한국의 모색-좌우를 뛰어넘다"라는 기획기사인 듯 싶었는데, "촛불집회로는 共和적 이상 실현 어려워"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촛불집회로는 共和적 이상 실현 어려워"

    김우창 교수를 직접 인터뷰하지 않았으므로 그분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사원문에 있는 짧은 동영상을 보았을 때에 촛불집회의 한계 내지는 부정적 측면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맞는 듯 하다. 물론 촛불집회의 한계나 문제점을 이야기 했다고 해서 그 분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우창 교수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적으로 옳다고 적극 동의하기도 어려운 입장인데, 그 이유는 "공화적 이상 실현"의 책임을 촛불집회에만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질문에 한정된 답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조선일보의 기사가 김우창 교수의 생각을 왜곡하지 않았다면, 나는 김우창 교수의 생각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촛불집회의 현재적 한계와 문제점만을 바라 보았을 뿐 촛불집회가 갖는 긍정적 의미에 대해서는 한 푼어치도 쳐주지 않은 부당함이 있기 때문이다.
     
    기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화적 이상 실현"에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은 촛불집회가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공화국"이라는 말 자체가 쑥스러울 지경이고, 그래서 어느 헌법학자는 그 역사 속에서 공화국인 채 하는 정권들을 보며 '공화국 모독죄'를 신설해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는 (정리 불가능한) 공화국 차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물음을 던져 보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몇 공화국인가? 현 정부는 지난 '좌파정권'과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 "제7공화국"이라 명명하고 싶을 지는 모르겠으나, 동의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제6공화국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현 정권은 "제6공화국 5기"가 될 것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다음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해도 별로 의미는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언제 공화국 같았냐는 게 문제다. 허무주의를 경계하지만 그만큼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면서 공화국 같지가 않았다.(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그게 어디 공화국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촛불집회는 공화적 이상 실현의 걸림돌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공화주의적 정치문화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김우창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촛불집회에도 한계와 문제점이 있고, 그런 지적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풀어나가야 할 '과제'에 속하는 것이지, 촛불집회 자체가 미래의 공화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한편, 촛불집회의 한계와 문제점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제기할 수 있는데, 김우창 교수는 인터뷰 기사에 게재된 동영상에서 지행합일 사상으로 인해 행동(실천)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의 잘못된 발로라고 보는 듯 하다. 아울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형태로 표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시 일리 있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완전하게 동의할 수는 없다. 김우창 교수가 말하는 유교적 전통의 습성인 측면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이 본질적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촛불집회가 반공화제적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공화제적 상황이란 사회구성원이면서 주권자 국민의 일원(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지 '개인'에게는 없다)으로 자각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권력집단이 결정하면 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억압적 상태를 말한다.

    만약 이런 생각이 설득력이 있다면, 현재적 관점에서 "촛불집회로는 공화적 이상 실현이 어렵다"는 주장은 '왜곡'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앞뒤 잘라낸 그야말로 쌩뚱맞는 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완전히 배척해서도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촛불집회가 공화적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앞으로 공화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그때는 김우창 교수의 지적이 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김우창 교수 인터뷰 기사가 계속 떠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해가며 신문을 넘겼는데, 뒷 부분에 이르러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김대중 고문 칼럼, "좌파와의 전쟁"

    글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앞에 있는 것은 인터뷰 기사요, 뒤에 있는 것은 칼럼이므로 '일관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이것이 공식적으로 조선일보의 입장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비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공화적 이상 실현"이라는 주제를 담았던 신문이, 돌연 공화국 대통령에 대해 '좌파와의 전쟁'을 시작하라는 글을 동시에 담고 있으니, 나로서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일보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혼란을 느낄 독자를 위해 김대중 칼럼에 '편집자 주'라도 달아 놓았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우창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그래도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 있고, 주의 깊게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여겼지만, 김대중 고문의 칼럼은 단언하건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아이들 교과서에 '反공화주의적 생각'의 예시가 필요하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글을 추천하겠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앞서 얘기한 김우창 교수의 인터뷰 기사 제목을 그대로 빌리면 된다.
     
    "김대중 칼럼으로는 공화적 이상 실현 어려워"

    정치적 입장이나 생각,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여, 같은 사회구성원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삼는 국가는 영원히 공화국이 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민주공화국' 국민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김대중 고문의 주장에서 쓰이는 근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좌파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좌파가 집권했을 때 좌파의 발목은 누가 잡고 있었던가. (아참, 김대중 고문이 좌파집권시기를 공화국 정부로 보는지부터 확인해야 될 것 같다.)

    지난 일 갖고 편을 갈라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김우창 교수가 말하듯 공화적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화에 걸맞는 합리적 체제가 필요하다. 그 체제의 기본은 "보다 너그럽고 관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진보진영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보수진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고문이 말하는 것이 과연 '공화'일 수 있는가? 그것은 독선과 아집의 주문일 뿐이고, 공화적 체제와 이상을 무너뜨리는 행위일 뿐이다.

    공교롭게 같은 일자에 실려 미리 읽어 보지 못했겠지만, 김대중 고문에게 조선일보를 '열독'할 것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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