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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에 부는 극우 바람, 정말 남의 얘기인가
    Not open 2012. 4. 29. 16:30

    서울대저널 통권 제 53호

    유럽에 부는 극우 바람, 정말 남의 얘기인가
     
    반기안(파리의 건설 노동자) / kianban@hotmail.com
     
     
     
    오스트리아, 이태리, 덴마크,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무슨 유럽으로 배낭여행 떠나는 친구의 행선지들을 나열한 것 같지만, 사실은 최근에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극우정당들이 위세를 떨친 유럽의 국가들 리스트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에 갑자기 이렇게 유럽에 극우 바람이 부는 걸까? 게다가 유럽 하면 전통적으로 관용과 자유, 평등 같은 가치들을 추구해온 대륙인데, 한두 국가도 아니고 여기저기 온 유럽이 바람에 휩싸인 걸 보면 예사롭지가 않다. 그럼 먼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그 영문이나 알아보자.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극우 바람 유럽을 강타하다

    지난해 2월 오스트리아 극우정당이 연정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건 오스트리아의 특수한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우선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2차 대전 중 이루어진 나치에 대한 협조는 점령국 독일의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는 논리로 전후 오스트리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피해자에게 보상은 못해줄망정 전범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극우정당 당수가 나치 군인 출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신념을 공공연하게 밝혀도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결핍된 이 나라에서는 별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었으리라.
    한편 지리적으로 서구의 변방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동구권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냉전 시기 철의 장막으로 철저히 봉쇄되었던 국경선은 냉전이 끝나면서 동구에 불어닥친 변화의 회오리에 그대로 노출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장기간 지속되었던 내전은 대규모의 전쟁난민들을 이 국경선 안으로 밀어 넣었으며, 조만간 이루어질 유럽연합의 동구권으로의 확장은 또다시 동구권 출신 이민자의 대량유입을 예상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과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운 극우정당이 유권자들에게서 일정한 반향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극우 바람은 갈수록 그 위력을 더해 가면서 하나씩 이웃 국가들을 삼켜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은 맏형답게 국제적 연대를 통해 유럽의 여러 극우정당들이 유럽의회에서 일치된 행동을 보여주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스트리아에서 극우정당이 연정에 참여할 당시만 해도 오스트리아에 대한 공동의 제재를 논의했던 유럽연합이지만 다수의 회원국들을 강타한 최근의 극우 바람 앞에서는 완전히 무장해제된 모습이다. 게다가 이제 극우정당들은 이 유럽연합의 한가운데에 있는 유럽의회에서까지 자신들의 발언권을 높이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극우라고 다 똑같은 극우가 아니다

    하지만 자국의 특수한 조건에 기반해서 형성된 유럽의 여러 극우정당들이 국제적 연대를 달성할 가능성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극우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뭉텅 그려 부르기는 하지만 이들의 이념이나 정강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태리의 극우정당은 이 나라의 역사적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태리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일은 밀라노가 다 하고 돈은 로마에서 다 쓴다”라는 말이 있다. 전통적으로 부유한 북부 이태리의 대표적 산업도시인 밀라노에서 징수한 세금을 로마에 있는 이태리 중앙정부가 가난한 남부 이태리를 위해 쓰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남북 지역간의 심각한 빈부격차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이루는 이태리에서 이태리 극우정당은 북부 지역의 분리독립이라는 극단적 처방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오스트리아 극우정당이 앞에서 말한 오스트리아의 특수한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 기반하고 있다면,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휩쓴 극우 바람은 다문화사회로의 급격한 이행 속에서 겪는 정체성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 나라들에서 극우정당은 문화와 종교가 다른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됨으로써 사회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선동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총선 결선투표 직전에 일어난 극우정당 당수의 피살 사건은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와 미스 네덜란드 등이 참여한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도를 오히려 높여놓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대선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프랑스의 극우정당은 실업과 치안 문제의 주범으로 이민자들을 지적한다. 이 극우정당은 프랑스 시민 다수가 겪는 불안을 이민자 및 외국인 소수에 대한 증오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잡종 다양한 움직임들을 일관된 흐름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데,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이라면 좌우의 전통적 구분에 아랑곳없이 아무 정책이나 취합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극우라는 말 대신에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부를 것을 권하는 최근의 경향은 이 흐름을 이해하는 하나의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 극우정당의 대선 후보였던 르펜은 결선투표 진출이 확정된 순간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라도 하듯,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나는 우파며,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나는 좌파다. 그리고 국가적인 문제에 관해서라면 나는 누구보다도 프랑스인이다.”라고 말한다. 좌우의 정치적 지향을 모두 만족시키겠다는 그의 야망에서 대중으로부터 인기만 얻을 수 있다면 좌우 안가리겠다는 그의 포퓰리스트로서의 시각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으로 보는 극우 바람

    유럽에서 일고 있는 포퓰리즘 운동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논의를 일정한 틀에 가두는 대신 대중으로부터의 인기를 위해 그때그때 각국 사정에 맞게 새로운 논점들을 덧붙이고 그중 몇몇 논점에 방점을 두는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포퓰리즘의 특징이 문제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킴으로써 구호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한 해결책을 가지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라고 할 때, 포퓰리즘의 부흥은 역설적으로 현실 문제가 지닌 복잡성과 이 문제들에 대응하는 현실 정치의 무력함을 말해준다.
    세계화가 낳은 실재적 혹은 잠재적 불안, 올해 유로가 도입되면서 극적으로 가시화된 유럽통합, 국경 개방이 낳은 이민, 그리고 실업, 치안 문제. 현재 유럽이 직면한 문제들은 간단하지 않으며, 현실 정치가 여기에 무기력한 반응을 보일 때 유럽 시민들은 더이상 국가가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면서, 감히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노라 외치는 극우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극우 쪽으로 돌아선 유권자들 상당수가 과거 사회당 혹은 공산당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이며, 극우의 발흥이 좌파 정권들의 실권을 낳았다는 점에서 극우 바람은 그 누구보다도 유럽 좌파에게 훨씬 큰 타격을 줬다.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세계화, 정보화 흐름 속에서 급변하는데도 유럽 좌파는 이에 걸맞은 새로운 변혁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실패함으로써 극우의 득세를 자초했다. 특히 유럽 좌파가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등의 구호 아래 우향우를 시험하는 가운데 이번 극우 바람을 맞았다는 점은 무척 의미심장해 보인다.
    유럽에서 극우 바람이 낳은 성과가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낮은 투표율로 표현되어졌던, 현실 정치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무관심을 이번 기회에 반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원래 언제나 적극적인 참여와 견제를 필요로 하는 아주 예민한 제도로, 이 원칙은 아무리 그 뿌리가 깊은, 민주주의 고향이라고 하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당시 기권했던 프랑스의 수많은 좌파 유권자들, 결선 투표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치는 우와 극우뿐이었다. 결선 투표를 몇일 앞두고 있었던 지난 메이데이,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파리 거리를 메우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복잡하고 유럽 좌파가 갈 길은 아직 멀어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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