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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행사와 검찰의 독립성
    Article 2005. 10. 16. 10:50


    [주장] 강정구 교수사건의 핵심쟁점과 천정배 장관

    강정구 교수의 발언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를 갖고 검찰이 '구속수사'를 하려고 하면서부터 시작된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곤죽이 되어 버렸다. 특히 법무부장관이 '불구속수사'를 하라며 검찰에 대한 지휘권을 최초로 행사 했으나, 이에 대하여 검찰총장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되 사임해버리는 대응을 하자 그야말로 난맥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쟁점이다. 강정구 교수의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시작해 그의 발언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에 관한 논쟁은 물론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한 논쟁까지 여러 가지 쟁점들이 혼재되어 있다. 나아가서는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와 검찰총장의 대응이 각각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되었는지에 관한 논쟁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쟁점들이 모두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현시점에서 뒤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인신구속의 실태와 신체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논쟁을 매듭짓는 유일한 쟁점이 아니다. 그러나 이 쟁점에서 출발해야지만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나 검찰의 독립성 훼손여부 등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애초 강정구 교수의 발언이나 국가보안법 문제와는 별개로 단지 그의 '구속수사 여부'를 두고 사건이 계속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인신구속의 실태와 신체의 자유'라는 쟁점은 이미 언론에서도 보도된 것으로서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번 사건에서 실제로 주요쟁점화 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답은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간단하다. 그것이 쟁점화 되는 것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강정구 교수를 구속수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 그를 구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과거 군사독재체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막강한 권한과 그 권한으로 만들어 낸 자신들만의 관행 이외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었다. 따라서 강정구 교수를 구속하고 싶은 그들 입장에서는 구속할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구속요건에 대한 쟁점화는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법무부장관이 지휘권을 행사했을 때 가장 극렬하게 나타났다. 법무부장관은 강정구 교수를 기소하거나 처벌하는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위배되는 구속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권한도 없지만 기소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며, 강정구 교수가 무죄라고 선고한 것은 더욱 아니다. 단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에 근거해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피의자 구속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므로 '불구속수사'를 하라고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쏟아진 말들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특히 한나라당은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판단을 장관 개인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매도를 하는 것도 모자라, 그동안 무시되어 온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휘권 행사를 도리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거짓으로 누명을 씌웠다.

    실로 집단도식병을 앓고 있다고 할 수밖에는 없지만, 앞서 말했듯이 한나라당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이렇다 할 법적 근거를 제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가 있는 피의자는 반드시 구속하거나 오로지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구속여부를 결정하면 된다고 주장할 수밖에는 없는데 그걸 직접 말로 할 수가 없는 참으로 딱한 사정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검찰조직 내부에서 합당한 주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전혀 반발할 문제도 아니고 검찰총장이 사퇴로 맞설 일도 아니라고 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생각이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이 사퇴로 대응했다는 것은 검찰이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현 시점에서 이해할 수도 없고 용인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검찰총장의 사퇴를 신호로 한나라당과 수구보수언론이 일제히 퍼붓고 있는 천정배 장관에 대한 사퇴 압력이다. 그들은 천정배 장관이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하지만 단지 그렇게 말할 뿐 어떻게 독립성을 훼손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없다. 구속요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는 피의자를 구속수사하려 하자 불구속수사를 지시한 것은 도무지 독립성 훼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립적이어야 할 수사내용을 간섭한 것이 아니라 '적법한 수사절차'를 지시한 것이다.

    한나라당과 수구보수언론은 그저 지금까지 누구도 건드리지 않던 검찰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는 것과 검찰총장이 사퇴한 모양새를 보고 그것을 독립성 훼손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정배 장관은 사퇴할 이유가 전혀 없다. 헌법과 법률에 비추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2005-10-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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