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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무장지대의 비극에 부쳐
    카테고리 없음 2005. 6. 20. 10:50

    아버지의 말씀처럼..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그것도 적이 아닌 전우의 손에 의해 생목숨들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지 며칠이 지났다.

    오늘 최종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살아남은 한 동료전우는 전우들에게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한 김일병을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고 했다. TV화면에 비친 그의 눈빛으로 보아 그가 가진 인간적 양심에 단 한점의 의구심도 없는 진심임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빼고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다거나 이해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해보기로 하고 우선 김일병이 용납될 수 없다는 이야기부터 해보자.

    사실 군대에서도 살인이나 폭행, 성추행 같은 범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소소한(?) 범죄는 대부분 사람들로부터 별 관심을 얻지 못하고 묻혀 왔던 반면 이번에는 '학살'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대살인극'이었다는 것이다. 평소 사람들의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는 사건들도 용납될 수 없는데, 이렇듯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학살극을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행위나 고뇌를 접했을 때 무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건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얻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만큼은 김일병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으며 그를 '미친 똘아이"라고 불러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설령 선임병들로부터 견디기 힘든 학대를 받았다고 가정 하더라도 그렇다. 가해자를 죽이지 않으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은 간혹 용서와 관용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죽이고 싶다'는 심정과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어쩔 수 없는 저항행위와 무차별적인 복수의 행위는 구분이 되어야만 한다.

    군 수사당국의 발표에 의한 것이지만 김일병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그저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다 죽여버리고자 했던 것 같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미친 똘아이라고 불러도 좋은 김일병이므로 때마침 그를 있는 그대로 미친 똘아이로 몰아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그렇게 책임을 면해보고자 하는 특정한 사람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소한 사건 직후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에 대한 책임이라면 모를까 김일병이 소대원들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고 방아쇠를 당긴 그 책임이 이미 고인이 된 소대원들이나 살아 있는 특정한 누군가에게 있다고 하기에는 아마도 힘들 것 같다.

    국방부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일지라도 설마 그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함께 생활했지만 결국 죽임을 당한 소대원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고 막을 수 없었던 일이다.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임을 우리는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친 똘아이 김일병을 미친 똘아이로 몰기만 하는 군 당국과 언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군 당국은 최대한 저자세를 유지하면서 모든 책임을 김일병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김일병 이외에 딱히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선임병들의 욕설과 같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김일병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질 만한 사람은 김일병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 당국이 하는 일은 그게 전부라는 것이며 이 사건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나서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게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과 같은 대응으로는 군당국이 '제2의 김일병'이나 'GP총기난사사건'에 버금갈 비극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한편 언론은 늘 그렇듯이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온갖 의혹들을 부풀리고 쏟아내는데 미친듯이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가령 그들은 당시 사건현장이 육군의 규정대로 돌아갔는가를 문제 삼으면서 이를 군기강 해이로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현장이 어떠했는가는 밝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들이지만 언론의 모습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는 군을 때리면서 사건을 흥미롭게 끌고 가기 위한 소재로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자. 소대원들이 그 시각에 취침을 하지 않고 있었다면 뭐가 달라지는가? 술은 GOP에서도 금지 되어 있으므로 GP에서는 당연히 금지이지만 만약 그들이 술을 마셨거나 그들에게 지급된 부식으로 회식을 했다면 뭐가 달라지는가? 머리를 내무실 복도로 향하지 않고 관물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대한민국 군대에서 규정을 100% 지키는 곳이나 사람은 흔하지 않다. 장소로 말하자면 신병교육대나 교육사단 정도가 규정을 지키는 강도가 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이제 갓 임관한 소위이거나 승진심사를 앞둔 대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규정은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 규정을 그대로 지키는 군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규정을 어겨야만 되는 경우가 많다.

    GP생활만도 그렇다. 언론은 그들이 근무하고 있던 GP가 열악한 환경이었음을 부각시킨다. 나는 수색중대원이었고 수색대대가 맡고 있는 GP에 실제로 들어가 둘러 본 적도 있다. 수색과 매복과 각종 작업으로 비무장지대를 누비고 다녀야 하는 우리들보다 GP생활이 훨씬 편하게 보여 GP생활은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천국'은 아니었다. 언론이 전하는 그대로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규정대로만 한다고 한다면 아마 나라도 미쳐버릴 것이다. 장담하건대 누구도 GP 안에서건 혹은 다른 어느 병영에서건 규정대로만 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계급에 따라 규정에서 벗어나는 일(취침시간, TV시청, 회식 등)을 향유할 수 있는 범위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이번 사건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뿐더러 특별히 군기강 해이로까지 문제 삼을 근거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취침시 규정대로 내무실 복도를 향하지 않고 관물대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어 의혹을 일으킨다는 보도는 이런 언론들이 보여주는 가장 어처구니 없는 예가 아닌가 싶다. 거의 모든 군대가 규정대로 복도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잔다. 그러나 GP에서는 다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인민군들이 침투해 내무실에서 자고 있는 수색대원들의 목을 전부 '따버린' 일이 있은 이후로 그때부터 GP에서는 머리를 복도 쪽으로 두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GP도 당연히 경계를 서긴 하지만 언제 침투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규정대로 복도 쪽으로 머리를 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가 지휘관이라도 규정을 무시하고 관물대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라고 지시할 것이다.

    이렇듯 언론은 열악한 환경임을 지적하면서도 규정을 지켰는지를 따지는 모습을 보였다. 군대 갔다 온 기자들도 자신들이 군생활 할 때 지키지 않았을 게 뻔한 그 규정들을 말이다.

    어쨌든 군은 저자세를 유지한 채 죽어 마땅한 김일병 죽이기에만 나섰고, 언론은 비통한 표정을 한 채 한편으론 신이 나서 제 역할(?)에 심하게 충실했다. 그러는 가운데 책임은 어디에도 없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오직 김일병에게만 그 책임이 있었다.

    앞서 말했던 대로 직접책임은 김일병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임이란 직접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김일병을 용서할 수 없지만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가지 기억 때문에...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실제로 그런 상상을 진지하게 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김일병과 비슷한 일병 때였을 것 같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군대에서는 하나 하나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거나 견딜 수 없는 모욕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김일병이 벌인 일과 같은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연대직할 수색중대이건 사단직할 수색대대이건 "민정경찰" 마크를 붙이고 DMZ작전에 투입되는 병력은 실탄, 수류탄은 물론 고폭탄이나 크레모아 같은 위력적인 무기를 거의 일상적으로 아울러 언제든 신속하게 사용가능한 상태로 휴대하고 다닌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증오하는 대상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그 증오하는 대상이 동료전우가 될 수도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니,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 인민군이기보다는 자주 부딪히는 동료전우가 더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옳은 지도 모르겠다.

    단, 동료전우의 경우 내가 증오하는 사람만 가려서 죽인다면 틀림 없이 내가 죽이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에 의해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죽이려면 다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월광조차 없어 내 행동이 가려질 것만 같은 밤에 언젠가 매복해 있던 적에 의해 수색대원들이 몰살 당했다는 흉흉하기 짝이 없는 지점에서 나는 김일병이 했던 일과 같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방아쇠 사이에 끼워두는 안전목을 빼고 조준간을 연발에 놓았던 적이 있다.

    김일병과 차이가 있었다면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다는 것 뿐이다. 그것은 너무나 큰 차이이지만 너무나 간단한 차이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심정만큼은 정말이지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이런 끔찍한 생각은 비단 나만이 가졌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비무장지대를 거쳐간 수많은 수색대원들이 거의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김일병을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고 한 이유는 바로 그런 기억 때문이다.

    여기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당기지 않는 것에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이성만을 믿기엔 너무나 짧은 순간이며 그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고 편리하기까지 하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쓰기 좋고 효과 좋은 살상무기가 김일병에게 없었다면 그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그 점은 근본적이지도 않고 그다지 설득력도 없어 보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한가지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비무장지대에 평화가 있었다면 김일병의 학살극도, 김일병에 의해 죽어야만 했던 생목숨들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한 수색대원이 전군의 1%만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이라며 자랑스워 했다는 그 비무장지대를 경험했던 한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그곳에 필요한 것은 군 기강 확립이 아니며, 육군 규정의 철저한 준수도 아니며, 소원수리처럼 애들 장난 같은 사전예방책도 아니다. 인권대책은 필요하지만 이번 사건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도 아니고 또한 그것이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않은 채 지침상으로만 적용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갈등을 역으로 키우기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곳에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평화'이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김일병의 행위와 연결 지으려는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무장지대에서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죽이고 죽는" 상상을 늘상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적일 수도 있고 가끔 드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전군의 어디에서보다 가장 실감나게 상상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죽이고 죽는 상상의 대상은 적이기도 하지만, 앞서 내 경험을 예로 들었듯이 때로는 동료전우들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언급한 것처럼 너무나 쉽다. 그들이 갖고 다니는 무기는 침투한 적을 신속하고 확실하게 죽이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동료들을 죽이고자 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28년 전에도 같은 사단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다음 28년 후가 아니라 비무장지대에서는 당장 내일 모레라도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김일병처럼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행위가 아니라도 아주 작은 실수나 불가향력적인 사고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번처럼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동료전우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침투한 적을 만나 죽임을 당하거나, 지뢰가 터져 죽거나 또는 제초작업 같은 것을 하다 6.25 전쟁 때 불발된 폭발물에 의해 죽거나, 아니면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사고에 의해 죽거나 모두가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매한가지로 개죽음에 속한다. 단언하건대 한 치도 좋고 나쁠 것이 없으며 아쉬울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개죽음일 뿐이다. 동료한테 죽었거나, 지뢰를 밟아 죽었거나, 지뢰 밟은 전우의 뒤에 가다 같이 죽었거나 똑같이 비참한 죽음이라는 것이다. 언론 또는 사회 전체가 그런 죽음을 차별화시킨다고 해도 그것은 정말 의미 없는 차별화이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밟아 죽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동료가 던진 수류탄에 죽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는 말에 나로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색중대원들은 농담 속에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선임병이 잘못한 후임병을 나무라다가 "너 오늘 매복 들어갈 때 나 쏠거지?" 하는 농담을 한다. 이런 경우야 분위기를 좋게 하는 농담에 불과하지만 그 농담 속에는 '가능성'이란게 들어 있다.

    매복호 안에서 매복을 할 때도 그런 가능성 있는 일들이 있다. 옆에 앉은 후임병이 수류탄을 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 일이 회자되기도 하고, 작전철수가 늦은 날 행정반에서 수류탄 한발이 없어졌다고 하면 말년 병장들이 팬티 바람으로 모두 줄행랑을 치던 재미있는 추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그 재미있는 추억들 속에는 늘 가능성이란게 있었다. 나는 왜 그런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으면서 직접 실행하지 않았을까? 또 나는 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숱한 가능성 속에서 나는 단지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매복작전에 투입되어 조준간 연발을 해놓고 나를 겨누었을 후임병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나는 김일병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를 전혀 이해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비무장지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고들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비무장지대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 밖에는 없다는 생각 말이다.

    그들에게 총과 수류탄을 쥐어주고 낮과 밤으로 매일 죽이고 죽는 상상을 하게만 하지 않아도 개죽음 당할 가능성은 엄청나게 낮아질 것이다. 그들에게 지뢰가 있을 지도 모르는 땅을 살아 있는 발로 지나가게만 하지 않아도 개죽음 당할 가능성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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