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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노동기본권'에 관한 토론
    노동법학/노동기본권 2007. 4. 17. 18:47

    * 이 글은 (거대언론사의 표현을 쓰자면) '불법체류 노동자에게도 단결권이 인정된다'고 한 서울고법의 판결(2006누6774 사건)을 비난하는 어느 인터넷 카페의 글에 대한 반론으로서 작성한 글입니다. 이 글이 반론의 대상으로 삼았던 글은 인터넷 카페 운영자에 의해 삭제가 되어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작성했던 글만을 올립니다. 반론의 대상이 된 글이 없으므로 불완전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우리나라 법원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또는 '불법체류자에겐 어떤 권리도 없다'고 하는 막연한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현재 이 사건은 결국 피고(서울지방노동청장)가 상고하여 대법원에 계류 중(2007두4995)입니다.


    1. ‘근로권’ 언급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판결에서 헌법에 규정된 근로의 권리와 노동법을 가지고 판단했다고 나오잖습니까?”라고 답변을 하셨는데, 판결문을 보셨습니까? 보셨다면 판결문에 근로권 이야기가 나오나요? 혹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재판부가 근로권을 염두에 두면서 판단했을 것’이라고 주관적인 추측을 하시는 것 아닙니까?

    서울ㆍ경기ㆍ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서울지방노동청장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설립신고서반려처분취소 청구소송의 이번 항소심(2006누6774) 사건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의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단결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인 것이지, ‘근로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근로권’은 국가에 대한 근로기회 제공 청구와 생계비 지급 청구 등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이지, 단결권과는 개념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자꾸 ‘근로권의 실현을 위한 하부규정이 노동3권’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2. 근로권과 노동3권

    우선 ‘노동3권이 근로권의 하부규정’이라는 주장의 출처를 다시 요청합니다.

    긴 이야기 하지 마시고 그런 설명이나 주장이 어디에 있는지 출처를 명확히 밝히시기 바랍니다. 헌법 교과서 아무 것이나 보라고 하시는데, 저는 찾을 수가 없으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갖고 있는 교과서는 권영성 선생님이 쓰신 것과 허영, 홍성방 교수의 것입니다. 갖고 계신 책 중에 권영성 선생님이나 허영 교수 정도의 책은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쪽수를 밝혀 주시고 출판연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목차제목’과 몇째 줄 정도를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교과서에서 보신 것이 아니라, 무슨 학원강사가 쓴 자료 같은 것에 나와 있더라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후배들에게 연락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노동3권은 근로권의 하부규정이 아닙니다. 노동3권의 보장이 근로권의 실현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로권의 실현을 위해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굳이 헌법해석이 아니라 노동기본권 발전의 역사만 알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보통 역사공부를 제대로 안한 상태에서 헌법에 접근하는 경우 심각한 인식의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근로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 노동3권’이라는 주장이 옳다면, 근로권을 실현하기 위해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근로권의 주체인 국민, 그 가운데 미취업 상태에 있는 국민이 단체행동권 행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것만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단체교섭권도 없으니 이 말에서 틀린 부분을 모두 제하고 나면 ‘근로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 단결권이다’ 밖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근로권의 실현을 위해 단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단결권은 근로권의 실현을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니므로 이 역시 틀린 명제가 됩니다. 무슨 거창한 헌법해석까지 갈 것도 없이 ‘근로권의 실현을 위한 것이 노동3권’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노동3권이 근로권의 하부규정은 아니라는 것이고, 노동3권을 해석하는데 개념적으로 전혀 다른 근로권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근로권은 노동3권의 의미를 규정하는 상위개념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단결권이 근로권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 따라서 단결권의 주체도 마치 근로권의 주체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결권의 주체는 엄연히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상의 근로자 개념과 일치하는 ‘근로자’이지 근로권의 주체와 같은 ‘국민(내국인)’이 아닙니다.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솔직히 대학에서 법학을 하신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불공평한 대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비유가 과도한 비유라는 것을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유권과 사회권을 구분하지 못해서 과도한 비유를 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비유에 대응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과도한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불법체류자가 일을 해서 번 돈은 강도짓으로 얻은 돈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마치 그것이 법적으로도 옳은 것처럼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그들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불법체류자가 일을 해서 번 돈은 강도짓으로 얻은 돈과 같은 것이라는 말에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표출하지 않으면서 거기에 대응하고자 의도적으로 내놓은 제 비유에 대해서는 모욕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혹시 불법체류자가 일을 해서 번 돈은 정말 강도짓으로 얻은 돈과 같은 것이라는 법적 평가를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불법체류자를 증오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들의 인식이 맞고 틀리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까?


    4.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된 겁니다. 우리나라 법원의 판례는 출입국관리법의 고용제한규정은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고용’이라는 사실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렇게 고용된 자의 근로계약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으며, 이번 항소심 판결은 근로계약이 당연무효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이 ‘단체를 결성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제11특별부만의 고유한 해석이 아니라 대법원의 기존 판단과 논리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출입국관리법의 고용제한 규정이 “근로관계에 있어서의 근로자로서의 신분에 따른 노동 관계법상의 제반 권리 등의 법률효과까지 금지하려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대법원 1995.9.15. 선고 94누12067 판결)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서울고법이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 판결을 내리게 된 다른 이유는 서울지방노동청에 조합원의 적법 체류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이 지극히 합당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단결권에 관한 해석은 접어두더라도 설립신고서 반려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이 잘못 됐다고 하는 주장이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가깝다고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혹시 이 점에 대해서도 ‘불법체류자는 노동3권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므로 심사할 권한을 애초에 명시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노동청에 적법 체류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모든 노조설립신고에 대해서는 조합원의 적법 체류여부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조합원 중에 불법체류자가 단 1명이라도 있으면 반려처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지요. 법해석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편하게 해석하면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편, 판례가 불법체류자에 대해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그것도 잘못 이해하고 계신 부분입니다. 물론 외국인이 근로권의 주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근로권은 아무 상관없는 문제이니 애초에 여기서 언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발 단결권 문제에서 근로권 이야기는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여하간 불법체류자라도 그가 체결한 근로계약은 유효하고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가 인정된다는 것은 판례에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비록 위장 취업을 위하여 불법입국한 외국인이라 할지라도)이 국내사업주와 불법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그 계약은 유효하고, 그 외국인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보호규정은 그 외국인인 근로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1993. 11. 26. 서울고판 93구16774)

    참고로 이 판결은 상고도 되지 않고 확정된 판결입니다. 법리상 더 따져 볼 것도 없기 때문에 정부가 상고조차 안한 것입니다. ‘근로권’에 관한 학설부터 시작해 이런 저런 개념들을 자꾸 끼워다 맞추시니까 무엇이 인정되는 건지 아닌지 갈피를 잡지 못하시고 계신 겁니다.

    여하간 출입국관리법 관련규정의 위반과 단결권에 관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므로 정부가 상고를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이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법체류자의 단결권을 인정할 법적 판단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대법원의 판례태도에 의하면 단결권도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 될 것입니다.

    한편, 다수설과 통설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다수설과 통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고, 다수설과 통설의 권위를 인정하는 만큼 판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판례의 법해석을 (이해조차 못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부정하는 것은 하시는 공부에도 도움이 안 될 뿐더러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도 잘못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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