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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녀들의 수다' 국적 시비 - 알다가도 모를 '외국인과 한국인'
    Essay 2007. 9. 30. 17:17

    KBS에서 방송 중인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출연자 가운데 일부가 사실 '외국인'이 아닌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내용의 요점은 출연진 중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그들 스스로 '한국 국적'임을 밝히지 않았고, 제작진 역시 이를 숨긴 채 '일본인', '러시아인'이라는 식으로 방송을 했기 때문에 시청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한국인이면서 외국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기사원문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한편, 추석날 MBC에서 방송된 프로그램 중에는 "외국인 며느리 열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그 프로그램에 나온 '며느리' 출연자들은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일 것임에도 방송은 내내 그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 기사가 전하는 문제의식 대로라면 "외국인 며느리 알고보니 한국 국적?"이라는 연속기사라도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마 그런 기사를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바보' 소리를 들을 테니까 말이다.

    국적상 한국인인 며느리들을 '외국인'이라고 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국적을 염두에 둔 법률적 개념이 아니라, 그냥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녀들의 수다'라는 방송에서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외국인 출연자들은 '외국에서 온 사람'일 뿐만 아니라 국적도 대한민국이 아닌 '순수 외국인'이어야 한다는 것일까?

    물론 기사가 전하는 문제의 초점은, 방송에서 출연자 자신이나 제작진이 그와 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오히려 의도적으로 은폐하여 방송을 했다는 것이고, 그점은 시청자들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참 억지스럽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시청자에게 국적을 밝혀야 한다는 법이나 도덕적 의무라도 있단 말인가?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국적이 어떻건 한국에 머물러 있거나 계속 살려고 하는 외국인, 즉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국적을 밝히지 않은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속았다니 도대체 뭘 속았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그런 주장이 '대책 없는 오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자기가 착각을 하거나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 착각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 의도적으로 기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처음부터 그들의 국적이 한국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그들은 '외국인 며느리'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이므로 국적과 상관 없이 '외국인'이라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혹시 자기가 속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들의 국적이 한국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 문제제기를 안 한 다른 시청자들을 '제작진과 한패'라고 주장할텐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자기가 착각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여하간, 한민족으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보아도 이렇게 갑갑한데, 외국에서 와 한국이라는 나라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정말 어떤 심정일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야말로 어디를 가나 '이방인'이지 않겠는가. 외국인이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해 이제 어엿한 한국인'이라고 하면 '당신은 순수한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하고, 외국에서 온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살아 온 이야기를 하면, '왜 국적이 한국이면서 외국인 행세를 하느냐'고 하니, 참 정 떨어질 만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할 때에는 그런 말이 없다가, 드라마 등으로 연예활동을 시작하자 그제서야 국적이 한국임을 밝힌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그들이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 국적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부당하게 한몫 잡은 거라도 있는가?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출연자들의 인기가 국적따라 좌우되는가? 또 그들이 새로 연예활동을 하면서 국적이 한국임을 밝혀 한몫 잡기라도 하는가? 그런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면 혹시 애초에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열심히 살고 성공도 해보고 싶은 것이 잘못인가?
     
    다시 말하지만, 외국인 며느리들의 국적이 한국이라도 '외국인 며느리'라고 부를 수 있듯이, 그것은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출연진도 마찬가지이다. '하이옌'은 국적이 한국이어도 동시에 '베트남인'이기도 하다. 그건 한국계 동포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하이옌은 외국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하다. 꼭 둘 중에 하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딜가나 자기가 그런 사람임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혹시 '방송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왜 그런지 설명을 좀 부탁드린다. 방송자막에 '출신국'이 아니라 반드시 '국적' 표시를 해야 될지도 모를 그 필요성에 대해 한번 근거를 들어보고 싶다.

    혈통이든 국적이든 '외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할 수는 있다. 그게 결코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의미가 자기 마음대로 뒤죽박죽 되어, 그때그때 그들을 규정하고, 소외시키고, 비난하기 위해서라면 정말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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