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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은 며느리에게 쐬이고, 가을볕은 딸에게 쐬인다."
며느리도 딸과 다를 바 없는데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거나 '봄볕보다 가을볕이 더 좋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좀 분명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봄볕은 안좋고 가을볕은 괜찮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가끔 "봄볕은 따갑지만 가을볕은 상쾌하고 따사롭지 않느냐"고 하면서 이 말을 하는 분이 계시는데, 물론 겨울이 가까울 수록 그런 날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좀 위험한 생각이다.
이 말은 '봄볕과 가을볕 중에 그나마 가을볕이 좀 낫다'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봄에도 가을에도 밖에 나가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그 볕이 모두 따갑고 좋지 않은데, 그나마 봄볕보다 가을볕이 좀 낫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별일 아닌 거 가지고 심각하게 따진다고 할 지 모르지만,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들게 된 생각이다.
추석연휴 마지막날 가족들과 함께 영종도 삼목선착장으로 낚시를 즐기러 나갔다. 출발할 때는 비가 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흐려서 아무런 대비 없이 썬크림도 안바르고 반팔에 그냥 모자만 쓰고 나갔다. 그리고 점심 때 쯤 되니까 해가 나기 시작했는데, "날씨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불어 그렇게 덥지도 않았으니 그야말로 "가을볕 따사로우니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낮동안 볕을 쬐고 나니 노출된 팔과 왼쪽 얼굴이 뜨끔뜨끔 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낚시용 조끼로 팔을 가리고 있었는데 이미 소용 없는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얼굴이며 팔이 뜨끔거리고 검붉게 타서 보기에도 안좋게 돼버렸다. 살꺼풀이 흉하게 일어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 그 뜨거운 여름에 하루 종일 배 위에서 낚시를 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는데(물론 그때는 썬크림을 잘 발라주었지만), 그렇게 덥지도 않은 날 몇 시간 노출되었다고 이렇게 된 걸 보면, 정말 가을볕도 주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봄볕은 며느리에게 쐬이고, 가을볕은 딸에게 쐬인다"는 말이 그렇게 야박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볕을 쐬이는(가을에 일을 나가야 하는) 딸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도 봄볕 보다는 가을볕이 좀 낫다고는 한다. 일사량과 일조시간, 습도 등의 기후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그 의미는 "좀 낫다"는 것이지, "가을볕은 안심하고 즐겨도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 나처럼 아무 걱정 없이 가을볕을 무시하거나 또는 즐기려고 하시는 분들은, 주의 깊게 살피시길 바란다.
아들은 살타는 동안 긴팔에 모자에 수건까지 착용하고 계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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