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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 근로자를 바라보는 인식의 한계
    특수주제/미등록 이주자 2006. 7. 24. 11:20

    미디어몹 붉은깃발님의 글, "외국인 근로자의 건설현장 유입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을 보고 설득력 있는 무언가를 막연히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붉은깃발님이 링크로 소개해준 '건설업고용특례자'에 관한 유용한 정보 이외에는 기대를 충족할 수가 없었다.

    그의 글에 전문적인 자료나 그럴 듯한 근거가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다. 내 주관적인 기대를 충족할 수 없었던 것은 붉은깃발님의 글이 동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조하지 않을 수도 없는 별 의미 없는 비현실적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으로 보자면 '현실노동자의 진솔한 한마디'는 될 수 있으므로 그 자체로 '현실성'이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 현실성이란, 소박함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는 대체로 감상적인 성질의 것이다.

    건설현장이건 어디건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문제는 단순히 찬성/반대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을 정책적으로 제한할 수 있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외국인 근로자 유입반대'를 외치는 것이겠지만, 인식의 틀은 여전히 이분법적 틀 안에 갇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붉은깃발님은 외국인 근로자의 건설현장 유입을 명백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들의 유입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붉은깃발님은 이곳 미디어몹에서 불특정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글을 올렸을 것이나, 반대의 외침은 기본적으로 방관하는 자 이외에 찬성하는 자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붉은깃발님이 염두에 두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붉은깃발님의 글에 비판적인 댓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외국인 근로자의 건설현장 유입에 찬성하는가? 아니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유입에 찬성하는가? 붉은깃발님은 스스로가 명백하게 '반대'를 외쳤으므로 자신의 글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찬성하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좀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붉은깃발님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찬성하는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가장 명백하면서도 상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다. 붉은깃발님이 설명했듯이 값싼 인건비 때문에 국내 건설노동자보다는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는 자들이다.

    찬성하는 자들에 속할 수 있는 부류는 또 하나 있다. 그들의 정치적 대변자들이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제한하지 않고 도리어 보장하는 입법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방치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그들에 속할 것이다.

    붉은깃발님이 어떤 사회현상에 '반대'를 외치고자 한다면 사회의 불특정 방관자나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그들과 관계하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이전에 그런 사회현상을 만들고 조장하는 보다 직접적인 대상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 관한 붉은깃발님의 노력은 대단히 부족해 보인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과 해결방법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붉은깃발님의 인식은 추측해 보건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나 혐오'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붉은깃발님이 '외국인 노동자 유입문제'를 그들에 대한 증오나 혐오의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치명적인 착오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붉은깃발님의 희망에 반해 외국인 근로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외국인 근로자를 증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거나 해고한 뒤에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람도 '외국인 근로자들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붉은깃발님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실상은 그렇지가 않을 수 있으니 붉은깃발님은 자기 생각의 초점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분모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사는게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건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에 아무나 다 어렵고 힘들다. 심지어 변호사도 서민이라고 하는 판국이다. 이 점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과다유입으로 붉은깃발님도 삶이 어렵고 힘들지만, 건설업자들도 사는게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를 들어 국내 근로자보다는 값싼 외국인 근로자를 선호한다. 그들은 진심이다. 붉은깃발님이 자신보다 더 열악한 상황의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관심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건설업자는 자신보다 더 열악한 상황의 건설노동자에게 별 관심이 없으며 자신은 진정으로 사는게 어렵고 힘들다.

    건설업자들이 값싼 인력을 공급받는 것을 더이상 못하게 해보자. 그들은 여지 없이 '어려운 사업여건과 빠듯한 생활의 논리'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건설노동자의 빠듯한 삶보다는 건설업자들의 빠듯한 삶에 더 관심을 두는 사회구조에 있다. 그 사회구조란 가장 크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이며, 좀더 세분하자면 '노동'의 보호보다는 '사업'이나 '경영'의 보장에 철저하게 이바지하는 국가적 시스템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왜 유입되는가? 왜 제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만약 그 문제의 원인을 '외국인 노동자의 탐욕'에서 찾는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붉은깃발님은 "'외국인 노동자의 탐욕'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탐욕"을 가진 사람과 그들의 대변자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앞서 붉은깃발님의 글이 동조할 수도, 동조 안할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글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내노동자의 보호와 외국인 근로자의 과다유입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 세계질서이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다.

    사실 확신할 수 있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 붉은깃발님의 주장은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제한하면 국내 노동자의 실업율이 감소할 것이다"라는 점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그 전제가 옳은 지는 모르는 일이다. 실업률 감소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으며, 건설업체의 도산이나 폐업으로 지금보다 더 열악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붉은깃발님에게 그점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해도 그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아울러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국내 노동자를 강력하게 보장하자는 것이 붉은깃발님의 바람이겠지만, 경영인의 마인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국인'이냐 '외국인'이냐가 아니라, 노동력의 질과 값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마인드도 나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일거리가 부족해 인터넷에 접속해 글 올리는 노동자들보다는 돈을 굴리는 경영인들이 더 중요하다. 그들의 인식은 서민의 삶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그것을 위해) 경제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가? 외국인 노동자인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보장받을 인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경영인과 정치인인가?

    나는 솔직히 경영인과 정치인이 그렇게 나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경영인과 정치인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보다 더 심각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을 외치면 사회주의 빨갱이라고 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가난한 자들이 수십 년간 일편단심으로 돈 있는 자들을 위한 정당을 선택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외국인 노동자를 쓰면서 적절히 국내 노동자도 요리하는 사업가를 비판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 자체만을 욕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말이다. 아마도 붉은깃발님의 글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경영인과 정치인의 친구가 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경영인과 정치인의 친구가 된다면 나는 아마도 비공식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적극 찬성할 것이다. 그것이 친구들과 나의 이익에 부합하므로.

    여하간 붉은깃발님의 주장은 좀더 정리가 필요하다. 붉은깃발님이 훨씬 주목할 만한 생각을 갖고 있으나 단순히 문제제기만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단언하건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반대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넘어 괜한 혼란과 분란의 씨앗만을 뿌리는 일이다. 붉은깃발님이 단순히 혼란과 분란을 즐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좀더 유용하고 설득력 있는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못 믿겠다면 지금 당장 길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찬성하십니까?'라고 물어보라. 내 생각엔 그렇다고 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아마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력도 필요하지만 제한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붉은깃발님처럼 그냥 반대한다고 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렇듯 적극 찬성하는 자가 별로 없는 대상을 향해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 접근해 놓으니 괜한 혼란과 분란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찬성하냐 반대하냐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붉은깃발님은 외국인 보다 같은 한국인을 더 증오해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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