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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보안법, 폐지가 끝은 아니다
    Article 2004. 9. 6. 11:44

     
    [주장] 전투적 민주주의의 완전 종식을 바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1949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일대 선언을 하였다. 아직 입법부에서 폐지된 것도 아니고 단지 대통령의 중요한 입장표명에 불과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하게 외쳤던 사람도 정계에 진출하여 좋은 자리만 꿰차고 앉으면 어느새 개정이나 존치론자가 되어 버리는 그 지난한 현실을 생각할 때 현직 대통령의 의지 표명은 분명 '선언'이라고 해도 과하지는 않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기나긴 세월동안 친일과 독재로 쌓아 올린 기득권의 확실한 보장문서였던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기 위하여 수구보수세력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저항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은 자꾸 법리적으로 얘기하지 말고 역사적으로 나타난 영향과 기능을 보자고 했지만, 국가보안법은 법리적으로도 당연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의 입장에서 특별히 내세울 만한 설득력 있는 법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껏해야 국가보안법이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장치인 것처럼 홍보하여 왔을 뿐이다.

    이유는 본래 의미의 진정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사상에 따른다면 국가보안법은 도무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법치주의를 깨뜨리면서 마치 그것들을 위한 것인 양 홍보되었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 존치론은 일종의 부당이득을 챙기기 위한 교묘한 허위광고에 불과했다.

    국가보안법이 사수 임무를 맡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가 북한체제에 대해 우월하다고 믿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말로는 똑같이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되지만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관용의 정신'을 핵심으로 하는 데 반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그런 관용의 정신이 없다는 데에 있다. 이를 '자유로운 민주주의(free democracy)'라고 한다. 영어의 'liberal'에는 '관용의'라는 뜻이 있으나, 'free'에는 '없는'의 의미가 있다. 바로 관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서로 경쟁하여 보다 좋은 사상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본래 의미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생각이라면,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생각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전자의 법리라면, 국가보안법 위반을 의심한 공안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후자의 법리이다.

    어떤 것이 옳은가? 어떤 것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인가? 당연히 사상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하는 그런 자유민주주의이다. 누군가가 단지 어떤 사상을 가졌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만으로 감옥에 가두는 것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라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독재체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 자주 들었던 '자유대한(Free Korea)', 또는 '자유대만(Free China)'은 그저 이들 나라가 사상의 자유가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는 전투적 민주주의의 반공국가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은 그런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불량한 사상에 의해 뒷받침되고, 동시에 그러한 사상에 의해 유지되는 기득권 체제를 지키기 위한 법에 불과했다. 국가보안법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안보'와도 거리가 멀고 '정치탄압'의 수단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래 전투적 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원조국가는 독일이다. 역사적으로 몇 단계를 거치면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도저히 헌법원리가 될 수 없는 근거를 들이대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헌법(본기본법)의 본래 내용인 것처럼 해석해 버렸다.

    그런 과정을 보면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했던 일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투적 민주주의의 선배국가이자 똑같이 분단을 겪었던 독일에서도 국가보안법 같은 법률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독일의 언론매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있던 송두율 교수의 사건을 보도하면서 '독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는 송두율 교수의 석방을 바라는 입장에서도 결코 좋아할 수만은 없는 소식이었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해 왔던 반민주적 지배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었다고 해도 국가보안법으로 다져진 그 위헌적 논리의 헌법해석은 분명 여기저기서 반전의 기회를 엿볼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킨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우선 수구적 저항을 물리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는 일에 온힘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그것은 민주화를 위한 싸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4-09-06 11:44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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