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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대법 심판은 아테네 올림픽보다 더 충격적 오심


[주장] 국가보안법 구출을 위한 헌재와 대법원의 '합동작전'을 지켜보면서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연이어 ‘국가보안법’을 비호하고 나섰다.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을 합헌이라 하거나, 또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에 대한 유죄선고를 대법원이 확정하는 재판은 지금까지 늘 있어왔던 일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두 ‘점잖은’ 기관이 무언가 새로운 작심을 한 듯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말은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절에는 함부로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그다지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군사독재보다는 훨씬 좋은 ‘문민’의 시절이 왔을 때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말은 자동적으로 반체제, 반정부, 친북좌파로 간주되는 신통력이 있었다. 정치적 후진국가의 국민이었음을 실감하는 일이었지만 ‘50년만의 정권교체’ 그 자체가 정말 반가웠던 시절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집행부 탈환에 다시 한 번 실패한 수구 보수세력이 조바심을 못 이긴 나머지 그나마 우위를 지키고 있던 입법부를 통해 반란을 꾀하다 실패로 끝났다. 그 탄핵정국 이후에 입법부에서조차 개혁세력이 조금 더 힘을 얻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바로 국가보안법에 관한 문제의식이 정부와 국회 차원으로까지 확산되어 ‘개정이냐, 폐지냐’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변화의 움직임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과거청산과 함께 사법개혁이 민주화의 또 다른 과제"

우리는 최고의 사법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이 바로 이런 시기에 나온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집행부를 잃고 입법부에서조차 ‘자업자득’으로 어이 없이 패전한 수구보수세력이 기득권 유지의 핵심인 ‘안보법 체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이제 사법부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이런 속내를 깊이 숨기지 못하고 입법부를 향해 안 해도 좋을 정치적 메시지를 남겼다. 차이가 있다면 헌법재판소는 매우 어설프게, 대법원은 좀 세련되게 남겼다는 것이다. 무얼 하든 항상 결정적인 실수를 남기는 이 모습을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인간다운 면모’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까.

그러나, 좀처럼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두 기관이 모처럼 보여준 단결된 모습은 쉽게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바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국민의 통제가 제대로 닿지 않는 ‘사법’이라는 이름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권이 객관적이며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을 때 사후에라도 바로 잡을 방법이 없다는 민주주의 원칙의 치명적인 결함을 뜻한다.

그렇다고 모든 법관이 기득권 수호의 마지막 파수꾼인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정치적 기능과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결코 객관적인 최후의 심판자라는 평가를 쉽게 얻을 수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헌법재판소이든 대법원이든 사법기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가 시원찮다는 것이다. 이 역시 오랫동안 지배체제 수호에 앞장서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 위에 군림해 온 법조계 일반의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신뢰가 형편없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사법개혁의 적극적인 의지를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한, 이들이 스스로 쉽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청산과 함께 사법개혁이 민주화의 또 다른 과제임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헌법재판소이다. 우선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에 비하면 국민들의 눈에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비쳐져 왔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체감거리는 3심제의 마지막까지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대법원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심심찮게 내놓은 일련의 위헌결정들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와 법질서를 올바르게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최고의 헌법수호기관이자 인권보장의 마지막 보루라는 이미지 구축에도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군사독재의 시대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는 없다.

자잘한 것은 위헌, 굵직한 것은 합헌

그러나 ‘자잘한 것은 위헌, 굵직한 것은 합헌’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헌법재판소를 미화하는 홍보성 이미지에 가려진 본래의 진면목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본질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헌법재판소가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는 법률들 가운데에서 비교적 가벼운 것들은 위헌결정을 내리지만, 핵심적인 법률에 대해서는 항상 합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체제가 반공지상의 전투적 민주주의로 유지되어 왔고 그 핵심수단이 '안보법' 체제이며 이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해 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위의 말은 다시 곱씹어 볼 수 있다.

즉,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와 인권에 부합하지 않는 비교적 가벼운 법률에 대해서는 위헌결정을 내리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대한 법률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합헌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중대한 법률의 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이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가 보이는 이러한 경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법재판소는 분명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결정적 사안에 있어서는 오히려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가로막는 최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합동으로 보여 준 이번 ‘국가보안법 구명작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수구보수세력이 믿고 의지해 온 국가보안법을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해낼 것인지, 혹은 목숨만은 끊어지지 않도록 겨우 살려낼 것인지, 아니면 작전실패로 끝나 국가보안법 장례식에 조문하게 될 것인지 말이다.

결과야 어떻든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보여준 심판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본 것보다 더 충격적인 오심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두 기관이 보여준 합동작전은 언젠가 끝이 날 ‘국가보안법 폐지의 역사’에 ‘수구적 저항’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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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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