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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죽음, '테러와의 전쟁' 빌미 돼선 안돼Article 2004. 6. 23. 11:19
[주장] 김선일씨의 이름으로 이라크 평화와 재건을 위한 민간활동 해나가자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할 말을 잊은 채 무너져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김선일씨가 끝내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비통하고 또 비통할 뿐이다. 한 생명이 너무도 억울하고 참혹하게 떠나갔고 우리는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그를 살해한 알 자르카위와 그가 이끄는 무장세력들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들의 목적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김선일씨는 군인도 권력기관의 일원도 아닌, 단지 학비를 벌고자 했던 선량한 민간인이었기 때문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이들 무장 세력들에게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또 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충분하게 예견되었는데도 끝까지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파병 찬성론자들과 이라크 파병을 적극 추진하고 결정한 대한민국 정부이다.
살인자는 따로 있는데 왜 찬성론자들과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파병 찬성론자들과 정부의 변하지 않는 입장에 있다. 그것은 이번 김선일씨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해도 국익이 더 중요하다는, 다시 말해 "소(小)를 위해 대(大)가 희생할 수는 없다"는 절대원칙이다.
명분 없는 전쟁의 땅에 파병을 추진한 파병 찬성론자들과 정부는 이미 대한민국 국민 '김선일'이 아닌 '파병'을 선택한 것이고, 김선일씨는 그 결과로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김선일씨가 살해된 이 시점에서도 정부와 파병 찬성에 열을 올리던 언론들은 변함이 없다. 그들은 김선일씨가 왜 죽음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하려 들지 않고, 파병원칙은 그래도 바뀔 수 없으며, 이제는 '테러와의 전쟁'까지 벌일 참이다.
세계가 비난하는 '더러운 전쟁'과 닮아 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완벽한 대책이란 없다. 파병을 전제로 한 대책 마련은 결국 또 다른 죽음을 만드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우리는 왜 파병을 해야만 하는가? 정부는 김선일씨를 구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우리의 파병이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위해서'라고 강조하였지만 이는 너무나 명백한 거짓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파병의 근거는 '국익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국익이란 것은 오직 '경제적 이유'와 '미국과의 관계'에 있다. 즉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 우리는 이라크에 불어닥친 상황을 이용해서 우리들의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파병을 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렇듯 너무도 뻔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평화를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이고 위선적인가.
이라크에는 한국군의 파병을 원하는 여론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했을 때에도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조선의 재건'에 있었고, 이때에도 조선인들 가운데에는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일본이 조선을 부강하게 해주면 약속대로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있었으며, 먼저 일본의 도움을 받아 부강해지고 난 뒤에 독립운동을 하자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을 친일파라 부르거나 적어도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독립을 얻고자 했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우리는 김선일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알 자르카위와 그 추종세력들을 이슬람 과격주의자,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라면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들은 모두 똑같은 과격주의자이며 테러리스트들이다. 그리고 이들 과격주의자에 대한 일본의 대응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당했던 치욕의 역사와 매우 흡사한 이라크를 보면서 우리는 '평화재건'이라는 서투른 홍보를 하며 경제적 이득을 위한 파병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비록 행위는 용서 받을 수 없지만, 김선일씨를 살해하기 직전 '거짓말은 충분하다'고 한 무장단체 일원의 말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정당한' 판단일 수밖에 없다.
이 비극의 모든 씨앗은 명분 없는 전쟁, 명분 없는 '파병'에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파병을 철회하고 철군해야 한다. 아직도 한국군의 파병 목적이 '이라크의 평화재건'이라고 하면서 파병원칙을 주장하는 위선적인 언론이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서라면 파병이 아닌 민간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또 다시 파병을 고수하거나 김선일씨의 죽음을 빌미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곧 제2, 제3의 김선일씨를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파병 찬성론자들과 정부는 김선일씨의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파병을 철회하고 철군하자. 그리고 김선일씨의 이름으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정부지원과 민간활동을 벌여나가자. 김선일씨의 억울한 죽음과 가족들의 슬픔을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는 없지만, 그 길만이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며, 그를 죽인 자들을 도덕적으로 벌하는 길이다.
파병을 철회하면 김선일씨를 죽인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그가 죽임을 당하고 길가에 버려질 때에도 TV를 시청하며 우리는 그저 '희망적'이었는지 모른다.
그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자신을 납치하고 살해한 세력과 다를 바 없는 절망일 뿐이었는지 모른다. 파병철회와 철군은 테러리스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김선일씨를 위해서 그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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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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