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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부에 이성을 촉구한다
    Article 2004. 6. 18. 10:30


    [주장] 송두율 교수 3차 공판소식에 부쳐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관한 항소심 공판은 또 다시 절망감을 안겨 준다. 방청하던 대학교수들이 우리 나라의 법학교육 수준을 개탄했다는 소식, 그리고 송두율 교수를 돕기 위해 온 독일의 한 변호사가 재판을 보고 난 느낌을 '기괴하다'고 했다는 소식에서 어쩔 수 없이 '미개'와 '야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가장 '문명적’으로 살아 있어야 할 한 나라의 사법부에서 우리는 왜 아직까지도 이런 '잔인한 사냥터'의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사법부를 모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지루하고 힘든 재판업무에 있어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상적 정의'가 없는 것도 아니며, 아직도 개혁하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사법부가 정의롭기를 포기한 곳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국가보안법과 같이 잘못된 가치와 질서를 부수고 변화를 이끌어 내어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는 대부분 정의롭기를 포기해 왔다. 국민들은 사법부를 보면서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확고한 기대와 믿음, 마침내 정의가 실현되어 진실과 이성이 승리했다는 가슴 벅찬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법부가 앞장 서서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킨 적이 그만큼 없다는 말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 국민은 정말 '법 앞에 불행한' 국민이 아닌가 싶다. 사회를 올바르게 바꿀 수 있는 그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나 태연하게 고급스런 야만을 저지르고 준엄한 심판자의 얼굴을 하는 사법부를 보면서, 정의를 위해 고달프고 처절하게 투쟁해야만 하는 불행한 국민을 보게 된다.

    법의 본령은 '보수'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실현하는 사법부에는 애초에 사회를 변화시킬 만한 가슴 벅찬 정의를 기대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하늘이 무너져 내릴 때 어쩔 수 없이 정의를 세우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만이 아니다. 사법부의 권력이 그렇게 나약한 것도 아니며, 법의 본령이 보수라고 해서 그 해석과 적용도 오로지 보수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법해석’의 영역은 이성적이므로 절대적이지 않으며, 또한 사법부는 기존의 잘못된 사회적 질서와 체제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주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번 재판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그러나, 재판은 또 다시 이성적이기를 포기하고 ‘국가보안법도 법’이라는 기계적 본성과 자의적 해석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지만, 제발 이성적이기를 촉구한다. 국제사회의 이목도 그렇거니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보안법의 애매모호한 잣대에 의해 또 다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짓밟히는 비극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2004-06-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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