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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진정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인가?


[주장] '국가 안보'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만 한다.

학창시절 어느 교수님의 헌법강의 시간이 생각납니다. 헌법판례를 발표형식으로 다루는 그야말로 법논리에 충실한 4학년 수업이었는데, 당시 정의감만 앞서는 2학년이었던 저는 명강의라는 소문만 듣고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수강이었기에 용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훌륭한 스승이 문득 '진실의 화살'을 날려 학생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전율과 함께 꽂히게 한다"는 이른 바 '인식의 혁명'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관한 수업도 그런 경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먼저, 발표를 맡은 학생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반인권적인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만 한다고 시종일관 주장하였는데, 이를 평가하는 시간에 교수님은 '사실 국가안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라고 하시며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관한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가안보는 중요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식에 불과한 매우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많은 학생들이 인권보장이라는 '정의로운' 가치에만 몰입해 또 다른 중요성을 가진 국가안보의 문제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인식의 한계'를 깨우쳐 주기 위한 매우 적절한 지적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지적처럼 인권보장과 국가안보는 모두 중요한 문제이므로, 국가보안법의 위헌성 여부도 비단 인권의 시각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의 시각에서도 평가해야 마땅한 것이었고, 저를 포함한 학생들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의 중요성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지적은 단지 논리적으로 훈련되지 않은 학생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깨우쳐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안보'에 터잡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존재가치, 즉 국가안보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한 수단인 국가보안법이 과연 중대한 국가안보의 문제를 제대로 충족시켜 왔는가 하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국가보안법을 국가안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평가는 관련 학자들이나 국제기구, 시민단체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져 왔던 부분입니다. 그런 평가들은 간단히 말하면 국가보안법이라는 특별한 법이 없어도 일반형법을 통해 국가안보를 유지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제기구는 특히 국가보안법을 통해서 국가안보를 지키겠다고 하는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들에 대해 그동안 한국정부나 국가보안법 존치를 외치는 사람들은, 오로지 '한국적 특수상황'이라는 논리만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즉, 한국의 분단현실은 국가보안법이 필요한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한국적 특수상황'의 논리대로라면, 만약 국가보안법이 없었다고 가정할 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동안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되어 온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복되었거나 최소한 국가안보에 대단히 큰 혼란이 초래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므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보통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심지어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까지도 되는 현실은 '한국적 특수상황'이라는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법'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치안유지법'과 해방 이후 '반공법'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보안법은 정작 중요한 국가안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성이 결여된 특정 세력의 기득권 체제 유지를 위한, 즉 그들만의 안보를 위한 억압적 지배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현실은 참으로 모순적입니다. 정치권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국회의원이 몇 십 명이라고 하고 이제는 없애야 한다고 하고 있으면서, 한편에서는 송두율 교수와 같이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는 이유로 처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국가안보'입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었던 사안들이 실은 국가안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거나 혹은 최소한의 경찰권 행사만으로도 충분히 목적달성을 할 수 있는데도 지금까지 국가권력이 위헌적으로 남용되어 온 것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이를 명목으로 국가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이 벌여 온 활동은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국가안보를 '희생'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어떤 일을 두고 그것을 경제적 가치로 따져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불필요하거나 또는 부당한 국가보안법의 집행을 위해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 본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지금의 국가정보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국가적으로 필요한 해외 정보수집 활동이 아닌 국가보안법에 근거한 국내외 정치사찰 등에 주력해 왔다면 여기에 들어간 경제적 비용과 손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혹은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들이 억압당한 데서 비롯된 경제적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에 저항하기 위하여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치른 희생의 경제적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한 국가보안법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치르는 남북민간교류의 비활성화나 국제적 이미지 실추와 같은 손실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냉전적 대치 속에서 남한에 의한 정복적 흡수통일이나 북한에 의한 무력적화통일이 아닌 대화와 화해협력을 통한 바람직한 민족통일의 기회를 국가보안법이 가로막아 왔다면 그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은 정말 얼마나 되겠습니까.

결코 과장된 상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한미군 감축으로 국방예산의 증액 등이 문제되고 심지어 주한미군이 없으면 외국자본은 일거에 다 빠져나갈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경제적 비용증대와 손실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보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보장해야 할 국민들의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처벌하면서, 국방예산을 자신의 축재와 낭비에 써버리는 장성을 비롯한 군간부들의 불법행위는 한낱 관행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안보의 철학도, 그에 따르는 확고한 안보정책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과거의 지배세력들이 국가안보를 빌미로 국가보안법과 같은 법을 유지, 강화하면서 정권안보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악용해 온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이 지켜 온 것은 바로 '국가안보=정권안보=반공'이라는 낡은 도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가 구축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국가안보'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선은 그것이 '안보법체제'를 통하여 냉전적 대립을 조장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억압적 현실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국가안보 정신은 헌법이념이 천명하고 있듯이 평화를 지향하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는데 바탕을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헌법이념에 따르는 국가안보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한 국가권력의 불필요하고 과도한 활동은 일반형법에 따르는 국가 경찰권의 일부로 재확립되어야 하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명확한 국가변란 행위에 대한 법해석을 확립해야 하며, 국가안보를 희생시키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합니다.  


2004-06-15 11:23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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