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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무장지대 녹슨 철마의 꿈, 평화!
    Article 2007. 5. 18. 11:32

    비무장지대의 경험으로 바라 본 남북열차 시험운행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주저 앉아야 했던 철마가 다시 달렸다. 그때 그 철마는 주저 앉은 채 녹슬어 고스란히 가슴 아픈 역사가 되었지만, 남과 북의 새로운 열차가 그 한을 대신 품고 달렸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당위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한결 같은 마음이겠으나, 남북열차가 달린 그 비무장지대에서 군생활을 했던 필자에게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북한과 가깝다는 생각에 누구나 두려운 생각이 들지만 익숙해지고 별 생각이 없어지면 비무장지대만큼 단조로운 곳이 없다. 그러나 그 단조로운 풍경 속에 고스란히 묻힌 한 맺힌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 표현하기 어려운 공포와 슬픔이 뒤섞이게 된다. 그곳은 낮에도 처연하여 슬프고 밤에는 귀신들이 거닐 것처럼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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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비무장지대 속에 있는 기차 화통도 처음에는 '아무나 직접 볼 수 없는 흔치 않은 구경거리'이긴 했지만, 익숙해지면 별 것 아닌 녹슨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뱀들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된 그 고철 덩어리는 보면 볼 수록 을씨년스러운 흉물이 되고 말았다. 특히 밤에는 그 옆을 지날 때마다 마치 무덤이라도 지나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화통 주변의 갈대숲을 보면 설마하면서도 꼭 오늘 밤 재수없게 적매복이라도 있지 않을까 머리끝이 쭈뼜 곤두섰다. 경의선 복원공사로 인해 지금은 어엿한 문화재가 되었지만, 수십년 동안 그 화통 옆을 지나친 군인들은 아마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흉물 덩어리가 싫고, 이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총을 들고 걷고 있는 이곳이 너무나 싫다고 말이다.

    어디 필자가 본 그 흉물 같은 화통이 있던 비무장지대에서만 그랬을까.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철책경계를 서고, 철책 너머 비무장지대를 오가며 군생활을 했던 수많은 군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곳에서 그런 비슷한 상념들을 가졌을 것이다. 그곳은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은, 슬픈 원혼들만이 피눈물을 흘리며 배회할 것 같은 땅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한적한 철길' 위에 멈추게 된 기차 화통인 줄만 알았다. 화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총탄 자국으로 인해 더 흉물스러운 '장단면사무소'도 그냥 그 건물 뿐이려니 여겼다. 하지만 수십년 세월에 나무가 우거지게 자란 곳에서 '장단역 플랫폼'의 형체를 처음 알아보고, 수색로 옆에서 문득 '우물가'와 '집터'들을 발견하고,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았던 그 드넓은 갈대밭이 누군가 땀흘려 일구던 '논밭'이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정말 무어라 말 못할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그 공포를 알게 되면, 그곳이 비록 생태보존을 외칠 정도로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 곳일지라도, 그저 황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멀리서 GOP(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최전방의 전초지역)로 관광을 온 어느 할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남편의 고향이 장단면이라면서, 그곳이 어디쯤인지 아느냐고 물으셨다.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그리 멀지 않은(그러나 그마저도 할머니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알려드리자 할머니는 가리키는 방향을 제대로 보시지도 못한 채 돌 위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리셨다.

    필자도 수없이 오가면서야 어느 날 문득 알아 볼 수 있었던, 그 폐허가 된 마을 어디쯤엔가 있을 집터가 할머니의 남편이 태어나고 자랐을 고향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물어 보시지도 않았지만, 내가 본 대로 그 모습이 어떻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살아서 다시 만나시기를 바랐지만, 만약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그 할아버지의 원혼도 비무장지대 장단면을 배회하고 있을 것 같은 허망한 생각만 들었다. 필자는 나중에야 그 할머니의 주소를 묻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폐허가 된 지도 오래돼 이제는 슬픈 자연이 돼버린 그곳의 아무 꽃이라도 꺾어, 아무 흙이라도 담아, 보내드릴 생각을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했다.

    비무장지대에서 경험한 이런 일들은, 당장 그곳에 필요한 것이 '평화'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설령 총부리를 겨누기만 하고 남과 북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곳에는 여전히 평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뢰를 밟아 죽는 군인이 있는 것도,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군인이 있는 것도, 깊이 생각해보면 아직 그곳에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상처를 치유하고 더 이상 비극과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그 가엾은 할머니가 직접 폐허가 된 남편의 고향마을 모습을 보면서 마음껏 오열이라도 할 수 있는 평화조차 아직 없는 것이다.

    그런 비무장지대를 철마가 달렸다. 외신들은 "한국이 세계와 연결됐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럴 듯 하게 붙인 과장된 보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도 벅찬 우리로서는 아직 꺼내기에 어색한 말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참으로 진취적이고 탁월한 표현이자 축복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팎에서 비뚤어진 푸념과 넌지시 재뿌리는 말도 들린다.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남북의 평화공존 체제가 반갑지 않은 외국은 그렇다치자. 그러나 우리는 제발 빈말이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현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하루가 힘든 서민의 삶을 사느라 북한과 손잡는 일은 모두 세금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끝나지 않는 휴전상태보다는 평화와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그 어떤 면에서건 우리에게 더 값진 일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날 '평화'는 인류가 공동으로 실현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지만, 국가적으로도 전쟁과 대립 속의 경제보다 평화와 공존 속의 경제가 더 이롭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공존을 향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지만 철마는 이미 달렸다.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도무지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더 흉물스럽게 보였던 녹슨 철마의 꿈이 이루어졌다. 이룰 수 없었던 고 손기정 선생의 한을 품고 황영조 선수가 달렸듯이, 이룰 수 없었던 녹슨 철마의 한을 품고 남과 북의 새로운 철마가 달렸다. 그것은 한 맺힌 역사의 치유이자 극복이고, 새로운 승리의 시작이다.

    2007-05-1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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