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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이툰의 활약과 파병문제
    Article 2007. 5. 22. 18:24


    성공적 임무수행에도 자이툰은 철수해야 한다
     
    자이툰 부대 파병 이후 처음으로 한국군의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사망한 오 중위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더불어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기를 바란다.

    오 중위 사망사건은 아직 사건의 정확한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이툰 부대에서 발생한 첫 사망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부를 긴장하게 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파병연장 동의안이 강행적으로 통과될 때 올해 말까지 임무를 종결하기로 하고, 그 계획을 오는 6월까지 제출하도록 하였으나, 정부는 이번 사건으로 파병반대와 조기 철수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비단 오 중위 사건 때문이 아니라도 파병문제는 다시금 우리 사회의 의제가 되어야 할 사안이고 그래야 할 시기이다. 파병에 관한 여론이 아직도 분분한 상태이고, 비록 임무종결과 철수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선일씨 살해사건과 국내 찬반여론의 극심한 대립을 겪으며 파병된 자이툰 부대는 파병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그동안 파병지역에서 긍정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은 이라크 내에서도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속하는데, 특히 자이툰 부대가 이 지역에서 수행한 ‘다기능 민사작전(그린엔젤)’으로 현지 주민과 쿠르드 자치정부(KRG)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전해져 왔다.

    그리고 자이툰 부대의 이 같은 활약은 파병반대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파병반대 진영에서는 파병반대운동 과정에서 자이툰 부대가 ‘침략 전쟁에 동원된 군대’라는 주장을 폈으나, 그 배경이야 어찌되었든 자이툰 부대는 오히려 파병목적인 ‘평화와 재건’에 부응할 만한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파병찬성론에 힘을 실어 주는 결과가 되었고, 파병찬성론자가 파병반대론자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었다.

    파병반대론의 입장에서는 자이툰 부대의 활약을 표면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도 있으나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파병반대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미 파병이 된 이상 우리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결과라는 주장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의 활약을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파병문제는 ‘자이툰 부대의 활약’만으로 판단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이툰 부대의 활약으로 인해 뒤엉킨 파병찬성과 파병반대의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먼저 파병반대론의 입장에서도 자이툰 부대의 활약은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이 될 수는 없다. 복잡한 국제적, 정치적 사정을 접어 둔다면, 학교를 지어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는 그 노력과 성과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의 활약 소식에도 파병반대론은 모순에 직면하지 않는다.

    파병반대운동의 단호한 투쟁구호로 인해 다소 멋쩍은 상황이 빚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 파병반대론의 핵심은 ‘한국군이 침략군과 같은 일(파괴와 살육)을 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군이 어떤 활동을 하건 명분 없는 전쟁에 파병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평화와 재건의 인도적 지원을 위해서라면 굳이 군대를 파병할 이유가 없다는 파병반대론의 일관된 논리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에 파병찬성론의 입장에서도 멋쩍은 부분이 있다. 애초에 파병찬성론자들의 주장은 자이툰 부대가 평화와 재건에 부합하는 활동을 벌여 이라크 민중에게 인도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이 파병부대의 공식적 이름임에도 파병목적에 관한 파병찬성론자들의 공공연한 입장은 ‘국익’과 ‘한미우호관계의 유지’에 있었다. 자이툰 부대의 인도적 활약이 파병찬성론자들의 자랑스러운 ‘승전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파병찬성론자들은 자이툰 부대의 성공적 임무수행으로 한미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국익을 위한 기반 또한 확고하게 마련했다고 여기고 있다. 이 점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지만, 그 전에 자이툰 부대의 활약에도 파병찬성론자들에게는 여전히 ‘세계 여론이 비난하는 명분 없는 이라크전 파병의 정당성’이라는 제출되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이툰 부대의 활약은 파병반대론을 무력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파병반대론의 입장에서도 본질적인 문제로 전체를 판단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자이툰 부대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 얻은 현실적 성과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파병반대론은 자이툰 부대에 대한 불필요하고 지나친 비난공격이 아닌, 보다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써 파병문제 해결을 모색해야만 한다.

    한편, 자이툰 부대의 활약은 곧바로 파병찬성론에 ‘면죄부’와 함께 ‘국익’이라는 전리품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파병찬성론은 파병반대론을 ‘감상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파병찬성론이 그토록 기대하는 ‘국익’이야말로 감상적인 것임을 깨달을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파병으로 인해 얻어진 국익이 어떤 것인지 대강의 결산보고를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파병찬성론이 추구하는 국익은 거의 뜬구름에 가깝다.

    그것은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여 얻어진 불분명한 이익’이고, ‘이라크의 쿠르드족과 우호적 관계를 만든 일’이다. 물론 이런 불분명함 속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국익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파병’이라는 중대한 결정이 설득력을 얻기에는 이렇다 할 실체가 없는 너무나 ‘막연한’ 국익이다.

    더군다나 파병찬성론자들 가운데에는 자이툰 부대의 활약으로 인해 한국 기업의 진출을 바라며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쿠르드자치정부의 우호적인 발표에 고무되거나, 이라크 최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의 원유개발권 약속에 ‘파병의 결실을 수확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달콤한 꿈이 아무런 문제나 갈등 없이 실현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와 주변국의 정세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대부분의 파병찬성론자들은 이 점에 있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간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자이툰 부대가 파병되어 있는 이라크 북부 지역은 새로운 ‘화약고’로 불리는 지역이다. 이따금 보도되는 언론 보도만 보아도 쿠르드 독립과 키르쿠크 지역 석유개발권을 둘러싸고 이라크 내부는 물론 터키 등 주변국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다. 그 갈등이 폭발할 지도 모른다고 예상하는 시점이 바로 자이툰 부대의 철수가 예정된 올해 말경이다. 물론 올해를 아무 일 없이 넘긴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한 순간에 다시 전쟁터가 될 수 있는 지역이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쿠르드 독립을 좌시하지 않으려는 터키 등의 국가와 쿠르드 간의 심각한 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때도 국익을 위해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는가?

    자이툰 부대가 파병될 당시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전에 터키에 양해를 구한 적이 있다. 터키가 쿠르드 문제에 극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한 외교활동이었다. 당시 터키는 한국이 파병하는 이유를 이해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는 파병의 이면에 얼마나 복잡한 문제가 존재하고, 자이툰 부대의 입지가 또한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잘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당장이라도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돌아올 것처럼 생각하는 파병찬성론자들의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산이다. 그들은 파병반대론을 감상적인 것으로 몰아세우기 이전에 현실을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자이툰 부대가 보여준 활약에도 우리 기업은 이라크 아르빌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 주민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가 환영하고 있고, 한국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는 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우리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지만, 김선일씨의 죽음은 우리 정부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국민에 대하여 어떤 태도와 조치를 취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 정부가 보호하거나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이나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에 부합하는 ‘파병상태’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이툰 부대의 활약으로 아르빌의 치안이 이라크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이를 바탕으로 날로 경제적 활기가 더해간다고 홍보하면서 그런 곳에 정작 우리 기업이 진출하지 못하는 모순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파병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내 여론이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파병에 있어 우리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국익은 ‘파병상태의 유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미국의 요구에 부합하여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좋게 이야기한 것이 바로 ‘한미동맹관계의 유지’이다.

    우리 정부는 대등하지 못한 한미동맹관계를 위해서 파병상태를 유지하는 일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론 파병찬성론은 그것만으로도 ‘중대한 국익’이라고 보는 입장이고, 그런 생각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의 얼굴로 다가가 뒤로는 마치 큰돈이라도 벌어들인 듯이 착각해서 저마다 계산기를 꺼내고, 미국의 열렬한 지지자이거나 또는 미국의 잘못된 전쟁을 전혀 비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라크 민중의 친구 행세까지 하는 정신분열의 모습에서는 도무지 파병의 정당성도, 파병 성과의 보람도 찾기가 어렵다.

    앞서 밝힌 대로, 파병의 배경이야 어찌됐든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자이툰 부대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자이툰 부대가 어떤 활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파병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향후 이라크와 그 주변정세가 어떻게 변화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떤 경우이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결정은 오직 ‘파병부대의 임무종결과 철수’이다.

    '자이툰'이라 불리는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이 무사히 돌아왔을 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평화를 외치고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비극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에게도 국제평화를 위해 기여해야 할 의무는 있을지언정 우리 군대가 그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갈등 한 가운데 있을 이유는 없다. 또 다행히 그런 갈등이 현실화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군대가 더 이상 이라크에 머물러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자이툰 부대는 반드시 철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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