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잡다한 서류뭉치들을 정리하다.. 갱지로 된 세계사 요점정리 유인물을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하찮더라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물건을 우연히 찾았을 때의 반가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의 중고등학교 역사교육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10여 년 전의 그것은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를 그렇게 성실하게 하지도 않은 주제에 역사 선생님을 욕되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낡은 갱지에서 묻어나오는 것은 '진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외워야만 했던' 그 시절의 갑갑함이다.
그리고, 그 빛바랜 갱지 위에서 나는 '로베스피에르'의 이름을 본다.
Maximilien de Robespierre
솔직히 대학에 들어와 역사세미나를 제대로 하기 전까지 로베스피에르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울러 몰라도 됐지만 도대체 왜 '공포정치'라는 것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공포정치'는 마치 미치광이에 의해 자행된 '독재'보다도 더 지독한 모습의 정치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베스피에르는 그렇게 '살인마', '독재자',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인물이었다.
그가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적어도 '나쁜 놈'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200년이 넘도록 그에게 덧씌워졌던 '공포정치'의 깊은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당시의 계급구조와 혁명의 경과를 제대로 된 역사관에 따라 알아야 하고, 혁명의 과정에서 전개된 헌법적 구상들과 그 사상적 배경을 알아야 하며, 혁명의 시대를 이끌었던 당시 혁명가들의 정치적 입장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들을 어설프게 조금씩이나마 맛을 본 지금은 어렴풋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보다 사형제를 반대하고, 공포정치를 혐오하며 두려워했던 그가 왜 그러한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그는 자기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실현이라는 진정한 혁명정신을 완수하기 위하여, 비단 프랑스 민중들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장 훌륭한 정치제도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앞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다시한번 '공포정치'가 등장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가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쓰러진 순간 민주주의를 향한 인류역사는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와야 했고, 남은 길 역시 아직도 멀고도 험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19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인도주의 작가 로맹 롤랑이 남긴 말은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가장 적합하고 정당한 평가이다.
"감히 로베스피에르의 명예회복을 요구할 만큼 공화적인 정부는 아직 한번도 없었다"
부르주아지의 반동 이래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누명을 쓰고 있는 로베스피에르이지만, 감히 그의 명예회복을 요구할 만큼 공화적인 정부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