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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총 때문에 '다빈치 코드' 꼭 본다
    Essay 2006. 4. 13. 05:46

    내가 써놓고도 제목이 좀 유치하다. 유치한 것도 모자라 혹시 영화배급사나 홍보업체로부터 몇푼 쥐어받지 않았냐는 오해를 살까 두렵기도 하다. 추후 홍보에 기여한 점이 인정되어 배급사 측이 공짜 티켓이나 약소한 기념품이라도 보내준다면 마지못해... 고맙게 넙죽 받겠지만, 정말이지 내 진정한 의도는 영화홍보가 아니다.

    어쨌거나 유치한 것도 알고, 냄새난다고 오해받을 것도 알면서 낸들 제목을 저리 붙이고 싶었겠는가. 그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라는 기독교 단체가 하고 있는 짓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고, 그 분한 마음을 온전히 되갚아 주는 길은 말로라도 저렇게 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붙이게 된 제목이다. 그래서, 그렇게 순간적으로 분을 참지 못하고 갖다 붙인 제목이니 다시 바꾸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랬는데... 다시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ㅡ_ㅡ); 오히려 지금의 한기총이 어떤 뻘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썩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문화생활이 거의 없는, 그러니까 어떤 영화든지 공짜로 보여주지 않는 한 그저 시큰둥 하고 말 나 같은 녀석에게도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꼭 보고야 말겠다'는 위험한 의지를 잠시나마 불러일으켰으니 영화홍보의 일등공신은 공교롭게도 '한기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기총이 하고 있는 일이 비단 '영화홍보'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한기총은 이미 법원에 <다빈치 코드>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는데,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하여 성전(?)을 위한 선전포고도 미리 해놓았다.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복음선교회로부터 잘했다고 칭찬까지 받았으니 사기충천해 있으리라.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가 갖고 있는 힘이 '사랑'이나 '희생', '용서' 같은 것이... 아니라.... 애석하게도 '금력'이나 '정치력', '물리력' 같은 것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왠지 이번 일이 자뻑 중에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자뻑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왜 자뻑일까? 한기총의 "영화'다빈치코드'특별대책위원회"는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영화 다빈치코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출하며

    영화 ‘다빈치코드’에 의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 진리에 대한 훼손과 모욕 그리고 이로 인하여 초래될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심각한 침해 및 교회의 선교와 전도를 방해하는 부정적 환경 조성에 한국교회는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미 지난 2003년 출간된 동명의 원작소설이 역사적 소재를 표면에 내세워 교묘한 소설적 허구 전환의 기만적 기법을 통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엄청난 오해와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한 바 있다. 그런데 문자매체보다 더 큰 파급효과를 갖는 영상매체, 그것도 지명도 높은 배우와 허리우드 제작사의 대규모 자본이 결합하여 전 세계 배급망을 통해 동시 개봉되는 이 영화는 허구를 역사로 착각하게끔 하여 일반인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소설보다 더한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 영화는 예수님의 신성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에 기초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그 줄거리는 교회가 살인을 불사하면서까지 예수님 후손의 생존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음모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신약의 교회를 그 출발부터 비윤리적·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으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확산시킬 것이 분명하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친숙한 소재를 차용하여 고증의 형식을 빌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기에 역사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에 기초한 역사왜곡을 진실인양 호도하고 날조한다. 그러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방패막이 삼아 영화가 조장한 허구로 인한 혼란과 갈등의 책임을 관객에게 전가하며 회피하려 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물론 영화가 제작된 미국에서는 美복음주의 교계 지도자들과 美카톨릭주교회의(USCCB)가 이 영화에 대해 총력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러시아 정교회와 싱가폴 교회 등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기만적 역사왜곡과 진실호도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 세계 각지의 교회들이 얼마나 큰 우려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영화 ‘다빈치코드’의 제작사와 배급사에 한국교회의 깊은 우려와 영화상영 반대의 명확한 의지전달을 위해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 제출함과 아울러 5만 한국교회의 뜻을 모아 세계교회와의 공조를 통해 ‘다빈치코드’의 허구성과 기만성을 밝히고 영화상영반대운동에 총력을 다 할 것을 천명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영화‘다빈치코드’특별대책위원장   홍재철 목사



    이 발표문의 핵심, 그러니까 가처분신청서의 '신청이유'에 들어 갔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부분은 서두에 모두 나와 있다. 즉 다음의 세 가지이다.

    ①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 진리에 대한 훼손과 모욕
    ② 이로 인하여 초래될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심각한 침해
    ③ 교회의 선교와 전도를 방해하는 부정적 환경 조성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설득력이 없다'고 하여 한기총이 언급한 위 세가지가 하찮은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종교이든 신앙의 대상과 교리,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아울러 종교활동의 자유 역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다.

    이렇게 한기총이 언급한 위 세가지 항목이 모두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에도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한기총은 그것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이유는 법적인 논리가 아니다. 그러나 법적 판단 이전에 이러한 모습은 한기총 스스로를, 아울러 개신교 전체를, 심지어 기독교 일반을 '독선과 미몽의 교양 없는 집단'으로 깎아 내리는 명백한 이유이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기총이 위에서 언급한 중요한 세 가지를 가장 크게 훼손하고 침해하는 주범이 바로 '개신교'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예수쟁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알다시피 이 말은 예수 밖에 모르는 기독교인을 조롱하는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충분히 모욕적인 말임에도 사실은 기독교를 모욕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예수쟁이'라고 비웃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고 강요하는 사람을 비웃는 것이다.

    아무리 개신교나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이라도, 역시 그가 욕하는 것은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도저히 제대로 믿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과 그 집단의 행태"를 욕하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의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진리가 훼손 당하고 모욕 당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를 두고 어디에 비유해야 좋을까? 자식이 잘못해 부모가 욕을 먹는 경우이고, 제자가 가르침을 어기고 온전히 따르지 못해 스승이 수모를 당하는 경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오로지 '기독교인의 종교적 신념'만 인정해 온 터이니 법정에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라는 말은 꺼낼 자격도 없다. 선교와 전도를 방해하는 부정적 환경조성은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영화 <다빈치 코드>로 돌아와 보자. 설령 그것이 악의적으로 교묘하게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 영화를 보고 기독교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잘못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기독교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한다면 <다빈치 코드>가 시리즈로 제작되어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확신한다.

    기독교의 운명이나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한낱 영화 한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들을 "믿음이 약한 자"라고 부르고 싶다. 무릇 믿음이 약한 자가 어느 쪽으로든 부화뇌동하고 경거망동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법이니 말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열정적으로 보이는 듯 하나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잊기 쉽다. 한기총은 자신들이 잊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마지막으로 어느 영화에서 얼핏 들은 성경말씀 하나를 남겨볼까 한다. 성경을 직접 찾아보지 않았으니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기억에 담고 있는 몇 안되는 문구 가운데 하나이다.

    "악과 싸워 이기려 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뒤덮으라"



    * '무거운 돌'님이 이 글에 보내주신 트랙백 "한기총은 과연 닭일까?"에 제가 쓴 답글을 붙여 봅니다. 이제 인터넷 공간에서는 기독교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평생을 나쁜 짓 하던 사람도 숨넘어 가기 직전에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가냐"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하는 개신교의 대답이지요. 이 부분에 관한 기독교 교리를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한국 개신교만의 독특한 교리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서양영화 같은 걸 보면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마지막에 천국에 가는 이유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희생(sacrifice)"이니 말입니다.

    "sacrifice"가 왜 천국행의 요건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영어사전에 나와 있더군요. 신학에서는 "sacrifice"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헌신, 십자가에 못박힘>이기 때문 입니다. 기독교인은 그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 천국에 간다>는 훌륭한 종교를 왜 그리 망가뜨려 놓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쨌거나.. 종교가 위안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 종교는 좋은 것이라는 말씀에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꽉 막힌 한국의 개신교도'가 된다고 하더라도 미워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평소에도 많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또 짜증나는 일이 반복되고 그렇습니다. 하하^^;;

    훌륭한 기독교인들도 많으니.. 기독교인에 대한 미움보다 기독교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가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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