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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삼륜 유감
    Essay 2006. 9. 24. 13:40

    1. 법조삼륜의 반목을 환영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과 이에 대한 검찰,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발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참으로 잘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잘됐다'는 의미가 법원(판사), 검찰(검사), 변협(변호사)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들이니 '서로 반목하는 것이 재미있고 고소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이 싸우는 모습은 우리가 정치인들에게서 지겹게 보아오는 것처럼 당장에는 보기 싫은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그들은 '진작에 반목해야만 했기 때문에 잘됐다'는 것이다.


    2. 법조삼륜은 사실 긴밀한 공생관계이다.

    지금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싸우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깜빡 잊게 되는 것 같은데, 그들은 본래 하나의 계층을 형성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매우 긴밀한 관계의 존재들이다.

    다시말해, 이른 바 '법조삼륜'이라 일컬어지면서 그들이 보여왔던 모습은 자신들에게 각각 주어진 책임과 사명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봐주고 도와주고 협력하면서 친밀하게 지내왔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서로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우리 사회의 특별계층으로서 '국민의 이익'보다는 '법조삼륜의 이익'을 공동으로 추구해 온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그런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냥 '재판'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가 쉽다. 검사와 판사는 변호사를 통해 뇌물, 접대를 받거나 다양한 형태의 인맥에 영향을 받아 불구속, 무혐의, 기소유예, 감형, 집행유예, 무죄선고 등을 해왔다. 검사와 판사 변호사 모두는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이런 시스템에 순응해 왔고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돈을 많이 들여 좋은 변호사를 산다'는 말에서 '좋은 변호사'란 '그 사건 분야의 법이론과 법실무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의뢰인의 입장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이든 돈이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사건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변호사'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스템에 검사, 판사, 변호사 모두가 공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시스템을 향해 비극적으로 터진 말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다. 생각해 보자. 이 말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일까? 형을 선고하는 판사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돈이 없으면 변호사 사무소 문턱도 넘지 못하고, 검찰에서는 원칙도 자비도 없으며, 법원에서는 정의와 용서를 기대하기 어렵다. 변호사, 검사, 법관 모두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범죄의 공동정범이며, 누가 더 잘못했다고 할 것도 없이 그들은 똑같은 비난과 책임추궁을 당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고 그저 편승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3. 그들은 오늘 반목했다가도 내일 화목할 지 모른다.

    건국이래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는 법조삼륜의 이런 긴밀한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서로 반목하는 것을 정말이지 '대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반목의 내용과 성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이 지금 반목하고 있는 모습이 '사법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 간의 알력다툼'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 사태를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대법원장이 법원조직의 힘을 키우기 위해 '공판중심주의'를 빌어 총대를 매고 일을 벌이자, 검찰조직은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관행을 지키기 위해 총대를 맨 법원수장 거꾸러트리기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총공격하기에 이르렀고, 그동안에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며 '공익적 특수법인'으로 보이기 위해 애써왔던 변협은 순간 욱하여 공들여 쌓고 있던 탑을 스스로 발길질 해 무너뜨리고 일순간 '변호사이익단체'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목은 환영하지만, 만약 이번 사태가 이런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한심하다'고 할 밖에는 도리가 없다. 우리는 정작 가야할 사법개혁, 사법민주화의 길은 가지 못하고 길 옆의 진흙탕에서 멱살잡이, 주먹다짐을 하는 한심한 삼형제를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한심한 모습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렇게 주먹다짐을 하다가도 공동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불현듯이 끈끈한 형제애가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마치 서로 헐뜯고 싸우기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하다가도 자신들의 견고한 지위가 흔들린다 싶으면 일치단결로 궐기하는 '국회의원'들처럼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까지 사법개혁의 여러 구상과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저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도 내놓을 수 없는 공동의 기득권을 갖고 있는 법조삼형제 때문이었다. 말장난을 좀 하자면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몽동상'인 셈이다. 서로 꿍꿍이속은 다르지만 때에 따라서는 형제화목하고 인화단결해야지만 하층민들이 풍천노숙할 때 '좋은 침상'을 함께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그런 형제들이다.


    4. 법조삼륜에 대한 생각

    (1) 법원에 대한 생각

    사태의 내막이야 어찌되었건 그래도 '공판중심주의'를 외치는 대법원장의 발언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일을 벌이기 위해 찾은 구실인데 왜 아니 좋겠냐'는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만 참는다면, 대법원장의 발언은 틀린 바가 없다. 그러나 그 말을 곱게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자기반성'과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의 발언이 '공격적'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는 충분히 반발을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까지 공격적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대한 자기반성과 그에 기반한 사법개혁의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라 본다. 만약 그가 대법원의 수장으로서 그동안 법원이 걸어왔던 길에 대한 반성과 함께 사법개혁을 실현해야겠다는 진실한 마음을 가졌다면, 일을 추진하기 위해 '과단성'이면 충분하지 '공격성'까지 갖출 필요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격성'이란 대체로 무언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쟁취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것임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대법원장의 발언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저 분란만 일으켜 놓은 그의 행동을 좋게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2) 검찰에 대한 생각

    검찰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헌법이나 법률이 규정하는 국민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조직논리가 더 우선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법원장의 공격이 국민들로부터 먼저 진정성을 인정받은 다음에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면 검찰은 여론에 의해 최대한 고립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조삼형제 중에 가장 '망나니'로 알려진 검찰은 역시나 기고만장이다. 대법원장의 말은 틀리지나 않았다고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안하무인이라고 할 밖에 도리가 없다.

    대법원장의 발언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 그 내용과 방식이 적절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검찰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리'나 '재판'이 '수사'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유일한 검찰일 것이다.

    (3) 변협에 대한 생각

    이번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한 것이 바로 변협의 대응이다. 변협으로서는 대법원장의 발언이 불쾌했겠지만, 조금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법원도 그렇게 잘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국민들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고 자신들은 굉장한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다면, 변협도 법원에 대해 똑같이 그렇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변호사이건 판사이건 똑같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비난을 수용하되 다만 공격적이었던 법원보다는 점잖게 비난을 해주면 될 일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서로 비난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난'일지라도 그렇게 서로 견제하며 과거를 반성하고 각자의 일에 책임감을 되찾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언제든 '환영받는 비난'일 것이다.

    그러나 변협은 너무나 경솔했다.

    대법원장의 발언에 먼저 경솔한 점이 있었고 그에 대해 변협은 나름대로 정당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겠지만,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한 변협의 반응은 실질적으로는 기고만장한 검찰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변협이 검찰과 더불어 대법원장을 다시 공격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것이 '변호사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변호사들의 내부평가도 있으므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변협이 검찰과 한차원 다른(다르지만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지금의 사태를 결과적으로 보면 '대법원장은 옳은 말을 했고 검찰과 변협은 쌍으로 덤비는 형국'이 돼버린 것 같아 아쉽고도 실망스럽다.


    5. 법조삼륜 그만하고 각자 할 일을 해라.

    앞서 말했듯이, 법조삼륜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긴밀한 관계를 벗어나 서로 발전적으로 견제하는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법원은 보다 겸허해져야 한다. 공판중심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가 마치 전적으로 검찰에게 있었던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된다. 검찰이 공판중심주의를 원하지 않고 그 실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되지 못한 일차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법원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실현을 위해 애썼어야 함에도 실상은 법원 스스로 포기해 온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과 변협 역시 겸허해져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원칙과 책임을 져버리고 도리어 역행해 온 것은 법원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직이기주의와 허울 뿐인 자존심을 내세워 분란을 확산시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숨은 의지를 관철시키며 입지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대법원장이 보인 경솔함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법조삼륜이라는 말이 누구로부터 또는 어디에서 유래한 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법관, 검사, 변호사의 역할이 모두 중요함을 뜻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있어 이 말은 '법을 다루는 일로 신분상승을 한 세 부류의 특권계층'을 가리키는 말일 뿐 그 이상의 별 다른 의미를 찾기 어렵다. 그러니까 이렇게 겉멋 부릴 것 없이 그냥 각자의 일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법관, 검사, 변호사의 역할에 충실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이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권위이든, 권력이든, 돈이든, 업무상의 편리함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그 기득권이 있던 자리에, 저마다 국민에 대한 봉사와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자리할 때에 비로소 '법조삼륜'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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