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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검사의 '부적절한 글'을 환영한다
    Essay 2006. 9. 13. 00:29
    어제 신문을 읽다가 다소 황당하다 싶은 기사를 만났다. 서울중앙지검의 현직 검사로 있는 금태섭씨가 '피의자가 수사받는 법'에 관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첫 기사로 게재한 글이다. 현직 검사라도 그동안 정말 뻔하고 무미건조한 기고를 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글의 내용이 좀 의외였다. 피의자가 검찰이나 경찰에게 수사를 받을 때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아마 대한민국 검찰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기고'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참 희한한 검사구나' 했는데 결국엔 그 검사 '필화'를 겪고 있는 듯 하다. 우선 검찰 내부에서부터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고 한다. 검사가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고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절하지 않은 조언'이니 결국 '자살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금태섭씨의 글이 우리나라의 수사현실에 관하여 한번쯤 주목해야 할 의미있는 이야기를 던진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해도, 정말이지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국민들도 '변호사 사라는 게 조언이냐'며 뭇매를 퍼붓고 있으니 말은 다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른 시각에서 이 일을 바라보고 싶다. 솔직히 나는 그가 작성한 기사내용은 접어두고라도 현직 검사의 그런 좌충우돌 기사가 반갑다는 생각을 한다. 왜? 검사들에게는 그럴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검사들은 개인이 갖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의견표명을 대외적으로 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서 '자유가 없다'는 말은 그들이 어떤 '속박'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럴 자유가 없는 대신에 보장되는 것이 있으니 애초에 '그럴 자유 따위'를 원하지도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검사들의 그런 자유 없음을 걱정하고 있는 게 한심하게 비쳐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자유가 없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도 좀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그들에게는 왜 의견표명의 자유가 없거나 제한되어 있을까?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중립성의 유지'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립성'은 왜 유지되어야 하는가? 이것 역시 어렵지는 않다. 그들에게 '공정한 수사와 기소'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의견표명의 자유는 물론 조직논리라는 칼날에 의해 '다르게 생각할 자유'까지 거세된 것처럼 보이는 그들에게 실상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그 '다르게 생각할 자유'에 포함되어 있던 '양심에 따라 생각할 의무'마저도 덩달아 거세되어 확실하게 면제받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검사들에게 의견표명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중립성의 유지'가 실현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결국 미리 준비된 '기득권의 조직논리나 정치논리'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립성의 유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면 그들에게 '공정한 수사와 기소'를 기대하는 것도 부질 없는 짓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금태섭 검사의 글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조언'이자 '의미 있는 문제제기'일 수 있다. 국민들은 '아무 말 하지 말고 변호사를 사라'는 게 무슨 조언이냐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중요한 조언'이자 동시에 '생각할 문제'이다. 그를 그렇게 비난했던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피의자 신분이 된다면 과연 제대로 처신할 수 있을까? 누군 변호사 살 줄 몰라서 안사냐는 반응이 많지만 오히려 금태섭 검사도 그점은 잘 알고 있다. 그는 차라리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생각하라고 했는데 막상 심각한 일로 피의자가 된다면 정말 그래야 한다. 그 방법 밖에는 없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심지어 변호사마저)도 자신이 심각한 일로 수사를 받는다면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대한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나가는 전관 변호사'이든 '무성의한 국선변호인'이든 오직 수사기관에 '공정한 수사'나 '관대한 수사'를 기대하고 섣불리 행동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열받아 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금태섭 검사가 자신이 속한 조직이 반기지 않을 일을 그저 심심해서 국민들 염장이나 지르려고 시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의 정신세계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의 돌출행동이 단순히 검찰내부에서는 '징계대상'이 되고 국민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으로 끝나고 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언제까지나 그런 식이라면 현실은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검사가 내면의 양심을 키우려 하겠으며 문제성 있는 자기 의견을 표출하려 하겠는가? '정신세계'라는 표현을 써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보기에 적어도 그는 현실에 안주해 자신에게 불리한 어떤 사실들을 숨기고 있는 '이중인격'은 아닌 듯 싶다. 현실의 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첫 기사부터 이렇게 터져버렸으니 그의 연재가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검사의 개인행동에 예민한 검찰이 금태섭씨를 어떻게 처분(?)할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가 옷을 벗는 사태까지 가더라도 국민들은 전혀 분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 역시 변호사 개업해서 잘 먹고 잘 살테니까. 하지만 나는 좀 우울할 것 같다. 자신의 의견을 갖고 표명하는 검사는 여지없이 제재를 받는 대한민국 검찰의 조직논리가 또 한번 승리해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검찰의 밥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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