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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심적 병역 거부는 국가안보 포기라고?
    Article 2004. 5. 27. 15:21

    [주장]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하여

    "국민에게 어떠한 권리와 의무가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것이 법관이 할 일"이라며, 서울남부지방법원의 한 판사가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권리, 즉 인권 가운데에서도 가장 절대적이고 기본적인 최상위의 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심의 자유를 병역거부의 문제에서 인정한 이 판결은 '양심의 자유'보장이 척박하기만 했던 이 땅에 실로 단비와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나온 이 반가운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일보>과 한국갤럽과 22일 전국 성인 122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죄 선고가 잘못됐다는 의견이 75.3%에 달했다. 찬성은 고작 12.9%에 불과했다. <조선일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을 반대하는 의견은 성별·연령별로 모두 다수를 차지했으며, 남성 중에서 병역 미필자도 67.5%가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병역문제에 있어서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반대의 이유는 '국가안보'와 '평등(형평성)'의 문제가 제시되고 있다. 즉,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누가 군대에 가겠는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는 재향군인회와 같은 단체 뿐만 아니라, 병역의무 이행여부와 관계 없는 불특정의 남성은 물론 심지어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 하다.

    이번 판결에 반대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반대의견이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국가안보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만큼이나 중대한 사안이며, 평등 내지는 형평성의 문제도 절대 무시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문제제기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 부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에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러한 주장이 '양심적 병역거부'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병역의무의 이행에 있어서는 국가안보나 평등의 원칙을 내세워 양심의 자유라는 인권 자체를 '제외'해 버려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래야만 하는가? 인권보장의 원칙 아래 국가안보나 평등의 문제를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는가? 편법과 불법의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병역기피'가 아니라, 스스로 감옥행을 택하며 양심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을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죄인으로 만들고 감옥에 가두어야만 하는가?

    이들은 이기적 집단인가?

    이들의 요구가 국가방위의 의무를 면탈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상응하는 것으로 대체해 달라는 것인데, 입영과 집총에 상응할 만한 대체복무는 전혀 없는 것인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 속에는 이런 문제의식이나 고민이 전혀 없다. 오직 '국가안보'라는 지상과제와 '형평성'이라는 다수가 누려야 할 권리의 주장 밖에는 없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은 ‘인권의 외침’이 아니라 한낱 이단적 종교집단의 이상한 교리에서 비롯된 이기적인 집단행동으로 단호히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수긍할 수가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고 있는 주장이 전혀 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하며 자기주장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의 인정이, 곧 국가안보를 포기하는 것이고 형평성을 침해하는 불평등한 것인지, 그것이 국가와 헌법 이전에 있는 천부적 인권을 고려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것인지, 국가와 헌법이 그러한 천부적 인권을 확인하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국가의 존립을 동시에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막중한 것인지, 이들 주장의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다.

    반대론자는 자신의 입증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논리를 찾자면 그들의 논리는 분단이후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해 온 '한국적 특수 상황'의 만능논리와 닮아 있을 뿐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논리가 없으면 자기주장을 뒷받침 하는 자리에 과장이나 왜곡이 들어 앉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들 가운데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국방체계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고, 병역거부의 사례가 대량 발생하게 되며, 결국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마치 병역의무가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행세를 하여 군복무 보다 훨씬 편할 것이 뻔한 대체복무를 요구하게 되고, 이런 혼란한 사태에 국가는 국방체계나 병역제도 관리에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군대에 가겠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필자는 “국방의 의무를 진정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사람이 갈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가장 좋은 예는 의미심장하게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의 경우다.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특전사에 자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분명 그가 반대론자들 못지 않게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국가안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임을 말해준다.

    군에서 '자원'을 요구하는 경우란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경우를 뜻하기 때문이며, 이 같은 사실은 그가 ‘정당하지 않은 병역거부’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런 조건이나 피해의식 없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를 포함해 바로 이런 사람들이 군대에 갈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국방의 의지가 투철한 반대론자들이 가면 된다. 군입대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양심에 배치되지 않는 사람들이 가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바로 그런 생각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의심받고 지탄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반대론자들이 아닌가 싶다. 과장되고 검증되지 않은 단지 자기주장에 맞춘 상황을 위기와 혼란으로 포장하여 유포하고 그것으로써 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피하려고 하고, 병역법에 의해 마지못해 끌려 오는 것이며, 그런 병역법의 변함없는 절대적 시행이 없으면 대한민국의 국방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말로는 자신이 이행한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하면서, 자신과 똑같은 방식이 아닌 다른 제도를 인정하는 것은 무조건 특혜라고 단정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인권은 때로는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영 못마땅하고 거슬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여러 인권 가운데에서도 특히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에서 많이 나타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권리가 억압받고 침해 당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과는 다르기 때문에’, ‘못마땅하고 거슬리기 때문에’라는 점이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또는 못마땅하고 거슬린다고 해서 인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 말로 국가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며,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다. 인권보장의 원칙 위에서 국가안보를 생각하고, 합리적이고 공평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닌 고의적 병역기피자를 엄중히 처벌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그 심사제도를 마련하여 병역의무에 상응하는 대체복무를 수행하도록 하며, '국방의 의무'가 바로 '국민의 생존과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모든 국민의 신성한 의무'임을 확인해야 한다.  


    2004-05-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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