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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라열 사건 단상
    Essay 2006. 6. 7. 00:51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을 탈퇴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줏어 들었던 '황라열'이라는 이름을 며칠째 계속 접하고 있다. 알다시피 총학생회장 선거과정에서 밝혔던 그의 이력에 은폐와 거짓이 있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선 이전부터 미리 확보했다는 기부금의 절반이 넘는 5천만원 가량의 출처가 자신이 관련된 성인오락기 제조업체라는 것이 밝혀지고, '한겨레21' 수습기자경력, 고려대 의예과 합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것에 이어 이제는 '무에타이 프로선수 자격획득'이라는 경력마저 사실무근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무에타이에는 프로선수 자격제도가 아예 없다는 것이며 황씨가 다녔다는 무에타이 도장조차도 그런 사람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의혹과 사실여부에 대한 보도만 있을 뿐이어서 이 사건에 관한 자세한 소식을 알 수는 없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제한된 보도 가운데에서도 황씨의 대응에 변화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처음에는 "사실전달에 착오가 있었다"거나 "분명히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태도를 유지해 왔지만, 은폐와 거짓이 밝혀질수록 자신의 행적을 분명히 하려는 적극적 '항변'의 자세가 아닌, '회피'의 자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경험칙상 그것은 의혹에 확신을 주는 일이다.

    사실 자기 자신의 이력을 변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이력이 어떤 공식적인 문서에 의해 증명될 수 없거나 또는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만들고자 한다면 누구나 손쉽게 황씨 못지 않은 드라마틱한 이력을 내놓을 수 있다.

    나부터도 닭장에서 태어난 비극적인 출생과 신문배달이나 자판장사 등을 하며 보낸 유년시절, 고등학생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투신, 든든한 빽에 의해 편안한 환경의 군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비무장지대 수색대 자원, 학부시절 헌법학 박사논문 집필 참여, 인천시 지역개발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참여, 정당활동 등... 다만 '한 가닥' 관련이 있을 뿐인 어처구니 없는 이력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황씨의 차이가 있다면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고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저런 '이력의 재구성'이나 '경력의 재발견'이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설령 나에게 이력의 재구성이 필요한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런 류의 의미 없는 이력들을 내세운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이력이 거짓이 아닌 분명한 사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내세울 만한 건 전부 끌어다 넣는 것이 이력이 아니라, 집어 넣을 이력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공직자 선거에서처럼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사항들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문제일 것이고, 그 선택의 기준은 대부분 '개인의 홍보'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질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실에서 보여지는 이력들은 '항목 늘이기'나 '거창해 보이기', '있어 보이기'로 일관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것을 '교양이나 사고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개인이 이력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도 '절제'가 요구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단 집어 넣은 이력에는 거짓이나 과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황씨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황씨의 이력을 둘러싼 문제에는 덜떨어진 보수언론의 문제도 심각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절제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진실에도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황씨 본인의 책임일 것이다.

    황씨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 않는 예전 운동권들의 학생회 선거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는 최소한 '이력'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출생연월일, 출신고, 입학년도, 남자의 경우 병역사항, 투쟁관련 전과기록이나 소속단체 사항 등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이력이 황씨만큼 화려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장담하건대 그때만 해도 황씨보다 더 했으면 더 한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그런 자기 삶을 이력에 포함하지 않았을까?

    말할 것도 없이 그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사회에서 '이력'이라는 것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도 그랬지만, 그런 삶의 경력들은 자신이 학생회장이 되어야 하는 단 한 줌의 '이유'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러가지 이유에서 '홍보' 자체가 필요 없는 시대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학사회에 '홍보'가 필요한 시대인가? 만약 학생회장 선거에서조차 '홍보'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면 나로서는 조금 우울할 수밖에 없다. '홍보'란 대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지 못하는 관심 없는 자들에게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광고가 없어도 꼼꼼히 좋은 물건들을 찾아내는 소비자가 있고, 허위광고인지 과장광고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며 그저 광고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있다. 내 은사님 중에 한 분은 병적이라고 할 만큼 구매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갖고 계신 분이 계셨는데, 처음에는 좀 심하시다는 생각까지 했으나 지금은 매우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규모를 떠나 그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소비자가 많은 사회의 경제가 훨씬 건강하다고 할 수 있듯이 정치나 선거에 있어서도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황라열 이력'이나 '反운동권'이라는 홍보효과에 의해 움직였던 서울대 구성원이 있었을까?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反운동권'이 선택의 기준이라면 그것도 좋다.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운동권이라고 해서 사회진보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권에 거부감이 없는 나조차도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反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들의 선택이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反운동권'의 홍보에 이끌렸던 서울대 구성원은 그 '反운동권'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며, 기대해 마지 않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짐작해 보건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는 '황라열 이력'과 '反운동권'의 홍보효과만이 있었을 뿐 그에 대한 '이해'는 없었던 듯 싶다. 그 몰이해의 결과는 '한총련 탈퇴선언'이라는 바보선언으로 나타났고, '황라열 이력 의혹사건'이라는 웃지 못할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찌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청문회도 준비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현재로서는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아가 서울대 구성원에 의해 제대로 마무리 되는 것이 중요하리라 여긴다. 그러나 자꾸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어 개운하지가 않다.

    거짓임이 진실로 드러나면 그를 지지했던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부끄럽게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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