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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라열 사건 단상 (속편)
    Essay 2006. 6. 8. 20:42

    단상은 그냥 단상으로 끝나면 될 일이지 무슨 속편까지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편이 나오게 된 것이 내 탓은 아니다. 그럼 누구 탓이냐고? 전적으로 황씨 탓이다. 보통은 남의 탓을 잘 안하는데 이번엔 어쩔 수가 없다. 황씨의 이력에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어쩔 수 없는 번뇌가 다시금 밀려 왔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렇듯 어처구니 없는 일로 번뇌를 일으켜 자꾸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여하간 그의 이력에 새롭게 드러난 문제란, 지금은 휴간 중인 기독교계 여성잡지 <레베카>의 수습기자였다는 것도 뻥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경과를 봤을 때 그다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뻥으로 시작해 뻥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젠 좀 지루하기까지 하다. 솔직히 이런 생각마저 든다.

    그가 서울대생인 것은 진짜인가?

    기자들은 서울대에 문의해서 그것부터 좀 확인해 보았으면 한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그가 '황라열'이라는 사람이 맞다고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그의 가족과 친구, 통반장 인터뷰는 물론 동사무소에서부터 행정자치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문의와 의뢰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아니, 궁극적으로 철학자 데이비드 흄 정도가 아니면 그의 진실한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사태가 이 지경이니 이제는 오히려 그의 이력 가운데 '진짜'였음이 확인되었다고 하면 그게 더 놀랍고 재밌을 것 같다.

    전편의 글에 '차탈래부인'님께서 남겨주신 댓글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실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명색이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 나온다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도 아니고 세트로 뻥을 칠 수 있는가 말이다. 하나 정도 뻥을 쳤으면 착오였다고 둘러대기도 좋으련만, 애써 제 무덤을 파 웃지 못할 '희대의 사건'을 만들었으니 이를 두고 '심성이 순박하다'고 해야 할 지 '머리가 아둔하다'고 해야 할 지 평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황씨에 대한 평가에 큰 관심을 두고 싶지는 않다.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엄격해야 할 일이지만, 그 일에 직접적 관련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황씨라는 사람을 그저 비웃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또 다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의문을 갖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정상적인 경우라면, 절대 황씨와 같은 일을 쉽게 시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너무도 쉽게 시도한 황씨와 이번 사건에 대한 세인들의 몇몇 인식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인터넷의 발달이 은폐와 조작을 어렵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져온다고 여기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터넷의 발달은 '은폐와 조작의 범람'과 그에 대한 '용인의 확산'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싶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같은 현상이 '낚시글'과 같은 단순한 재미 위주의 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의 독재는 더이상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음흉하게 이루어진다"고 한 마페졸리 교수의 말처럼 모든 것이 공개적이고 투명할 것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도 정보의 은폐와 조작은 이루어지며, 인터넷이 갖고 있는 광범위성은 오히려 그런 시도를 수월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그러한 정보가 '사실적 정보'가 아닌 '가치적 정보'일 경우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박근혜 린치피해사건'에서도 보았듯이 그저 하나의 '범죄'에 불과했던 사건은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에 의해 정치적 의미를 갖는 '테러'로 규정되었고, 곧바로 부당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주목할 것은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확산되어 마치 '진실'인 것처럼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사태가 이렇게 진행 되었을 경우 사후적 해결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사후적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은 "진실을 통해 사후에 해결방법을 제시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진실"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폐와 조작에 대한 용인의 확산'이다. 다시말하자면, 은폐되고 조작된 정보가 끝까지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박근혜 린치피해사건'에서처럼 사후에 아무리 정치적 배후가 없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그 사건은 '테러'라는 이름으로 계속 남게 된다.

    '용인의 확산'은 비단 박근혜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의 성희롱 사건을 보자. "성희롱 했으면 어때?"라는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운 인식을 인터넷 공간에서는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번 '황라열 구라사건'에서는 "뻥 좀 치면 어때?"라는 인식이다. 솔직히 황씨가 구라를 친 것보다 나는 이런 현상이 더 골 때린다.

    도대체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날까?

    나는 학자가 아니므로 제대로 된 답을 찾기가 어렵지만, 언뜻 머리 속에서는 "성공논리"가 떠오른다. 그것은 건국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가장 막강한 이념이자 보이지 않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란 성공한 자들에 대한 법치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는 사회를 의미했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괴한 논리는 아예 그 잘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송두리째 부정한 사례였다. 이런 이념과 원칙들이 과거의 일로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사회의 지배층을 이루는 성공집단의 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선거에서 압승하면 '정보의 은폐와 조작 책임'이 실질적으로 조각되고,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는 '성희롱'을 해도 유지된다.

    그럼 이번 사건에서는 어떨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구라사건이 밝혀져도 황라열씨는 "그래도 서울대생"이고, "어쨌든 총학생회장"이다. 그가 총학생회장직에서 물러날지 여부를 떠나 그는 이미 "성공한 모델"이고 그것은 현실적 힘을 얻는다. 그리고 아무런 의식 없이 그저 성공모델만을 뒤좇거나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황씨의 행위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황씨가 은폐를 했건 조작을 했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좋게 인식하는 성공모델의 구성부분을 '못살게 구는 존재'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황씨보다 더 큰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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