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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동의 추억
    Essay 2006. 7. 14. 12:52
    신문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건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얼마전에 있었던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전하는 <한겨레>의 기사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전달과 함께 기자의 소감이 곁들여진 그 글은 "되돌린 정치시계 '미래'는 없었다"라는 제목 그대로 과거로 온전히 회귀하려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전하고 있다.

    '재밌게 읽었다'고는 했지만 사실 기사의 결말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우리 나라 정치의 비극적 현실을 토로하는 내용이다. 아무리 한나라당이 망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일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해도 확실히 재밌을 수만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변한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해도 아직 현실은 암울하다.

    그러나 늘상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실이 암울하다고 하여 그저 '암울하다'고만 하고 있는 것처럼 한심하고 암울한 일도 없다. 겨울이 지나야 비로소 봄이 오고, 새싹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있어야 돋아나는 법이므로 그렇게 암울할 것도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시련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니 다만 추스리고 기다리며 맞이하는 일을 잊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기사를 읽으며 알 수 없는 편안함과 함께 재미를 느꼈던 것은 아마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죄값을 치루어야 할 것들이 맞이하게 될 인과응보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화려한 축제를 보는 듯 해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참으로 재미있다. 과거청산 요구에 대해 그토록 '미래지향'을 부르짖던 한나라당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그냥 무턱대고 비아냥 거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물론 꼭 예전의 인사들이라 해서 미래지향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온 사회가 '혁신'의 구호로 넘쳐나고 있으니 굳이 남녀노소를 가릴 것도 없다. 그러나 선거에 압승하며 재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과 우리 사회의 미래에 과연 '그들'의 등장이 적합한가?라는 의문을 던져보면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때는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떨쳐버릴 수 없는 약점으로 여기기까지 했던 존재들이 일거에 화려하게 재림을 하는 형국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죽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토록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된 데에는 어떤 논리도 설득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는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의 큰 교훈을 전해주는 사건일 뿐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도 지속된다"는 진리 말이다. 그토록 미래지향을 부르짖던 한나라당의 청사진은 결국 놀랍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하나의 심령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쨌든 이렇듯 되살아난 옛 유물들이 벌이는 '반동의 잔치'를 보고 있자니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느껴지던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해결하지 못했던 것도 모자라 보란듯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부정의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그 답답함, 비유하자면 말 그대로 '반동의 추억'이다.

    사실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이 '보수'를 자처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들이 어떤 '이념'이 아니라 그저 좋았던(?) 옛날의 '추억'에 사로잡힌 집단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친일의 추억, 전쟁의 추억, 새마을운동의 추억, '군사혁명'의 추억, 고도성장과 재벌의 추억, 박정희의 추억, 심지어 전두환의 추억, 반공의 추억, 그들이 '보수이념'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의 실체는 이렇듯 뼈대도 살도 없이 그저 짓밟고 올라서는 데 성공한 지배자들의 스산한 추억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에는 분명 다른 이름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매국의 추억, 군홧발의 추억, 독재의 추억, 살인과 고문과 폭력의 추억, 억압과 착취의 추억, 차별의 추억, 국곡투식 부정부패의 추억, 투기와 축재의 추억,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추억들이다. 나는 그 용서할 수 없는 숱한 추억들을 뭉뚱그려 바로 '반동의 추억'이라 하고 싶다.

    기껏해야 한 정당의 전당대회일 뿐이지만, 참으로 재미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가려지고 희석돼 가는 듯 보였던 한나라당의 본원적 실체가 한바탕 잔치로, 축배의 노래 속에 무대 위에서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잔치는 잔치로되 이른바 '중도소장파들'이 오물을 뒤집어 쓴 채 그야말로 '똥씹은 표정'으로 물러나 앉은 분열의 복고풍 잔치이다.

    이 재미있는 현상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눈앞의 내우외환 때문이지만, 이번 일이 어떤 정치적 '결말'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좀더 기막힌 일들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계기이자 전환기가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막연한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잔치는 아무래도 '전야제'일 듯 싶다.

    기자의 말대로 한나라당의 정치시계는 확실히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기자는 본심이야 어떻든 이 같은 정치적 역주행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래 정치시계, 아니 역사의 시계는 그렇게 돌아갈 때가 많다. '반동의 추억'은 심약한 중독자가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한나라당의 끊을 수 없는 유혹인 동시에 독이다. 아니, 그 지배체제의 단물과 천박한 인식의 일대 결합은 한나라당의 존재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게 없으면 '한나라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것은 한나라당에 대해 갖는 유일한 '기대'이자 '믿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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