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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성격차보고서'에 대한 왜곡된 반응
    Essay 2006. 11. 23. 12:19
    '세계성격차보고서'에 대한 왜곡된 반응
    - 남녀평등에 관한 왜곡된 인식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이 '세계성격차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06)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15개국을 대상으로 각 국가의 경제, 교육, 정치, 보건 분야의 남녀간 성 격차 지수를 작성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다.



    1.

    이 흥미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각 항목별 순위를 종합한 전체 순위가 92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중등교육'(Enrolment in secondary education)이나 '건강한 기대수명'(Healthy life expectancy)에서는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아래의 그림과 같이 나머지 거의 모든 항목에서는 60위권 밖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평등'(Wage equality for similar work)과 '출생성비'(Sex ratio at birth)에서는 100위권 밖의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프 상으로만 얼핏 본다면 '경제'와 '정치' 분야의 남녀 성 격차 현실은 실로 참담할 지경이다.


    '세계성격차보고서' 중 한국의 항목별 산출내역


    2.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 가지 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이처럼 유익한 보고서가 한국의 남성들에게는 그다지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정도를 넘어 '허위 보고서' 취급을 하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여성의 현실은 '건강은 세계최고'라는 점을 인정하고, '교육'과 '보건'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성 격차를 문제 삼을 만한 '불평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려 110위를 기록한 '출생성비'의 해결을 위해 여성가족부에 '출산장려운동'을 요구하기도 한다. 보고서 상으로 성 격차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경제와 정치 중 '정치' 분야의 현실에 관련된 언급은 왜 그런지 거의 없다.

    한국의 남성들이 가장 예민하고 거친 반응을 보이는 분야는 주로 '경제'이다. 그들은 고용과 근로조건 등에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거나 최소한 결코 불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끊임 없이 주장하면서 보고서의 내용을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 주장의 거의 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에 의한 판단이거나 극히 피상적인 예를 일반화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초등학교 교사의 여성비율이 높다는 점을 들어 보고서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며 '남성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식이다.

    여기서 '남성 vs 여성'의 싸움을 붙일 생각은 없지만, 신뢰할 만한 기관의 객관적 연구결과조차 주관적인 일화로 부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런 대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등장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접근은 분명히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이번 보고서와 같은 조사보고 활동 역시 '성 격차'에 관한 지표를 작성하여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려는 것이지 대립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3.

    오히려 대립은 편협하고 왜곡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이번 조사에서처럼 순위가 낮게 나온 국가들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성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여성들은 속박되어 있는 상태의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스스로 오해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느끼는 것은 '남성들도 살기 힘들고 여성들이라 해서 특별히 억압받는 것도 아닌 상태'이므로 조사결과에 대해 성급하게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여기에 주변에서 목격되는 '잘 나가는 여성'의 예가 겹쳐지면 '역차별'을 주장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조사결과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한 이분법적 결론을 도출해 낼 수는 없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을 가장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이러이러한 성적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결코 '남성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여성은 비참하다'가 아니다. 물론 성적 불균형의 원인이 남성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항목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결과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가령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불평등'의 경우 그 문제의 '원인'이 반드시 '남녀차별'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과거에는 남녀차별에 따른 임금차별이 있었고 지금도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는 '학력차별'이나 '비정규직 차별'과 관련성이 더 커졌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고 비정규직으로 유입되는 여성비율이 높다면 그것은 여성의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불평등을 초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결과적 현상을 '남녀불평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을 처음부터 무작정 '남성 vs 여성'의 대립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4.

    고등교육을 받고 정규직으로 진출한 여성의 경우 임금차별을 받을 여지는 매우 적다. 설령 차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여성이 구제받을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다. 이 점만을 생각한다면 '여성의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불평등의 수준이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을 근거로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을 곧바로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나머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임금차별을 받는 수많은 여성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실제로 원인이 어디에 있든 조사결과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위의 예에서 보듯이 '여성문제'는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를 의미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앞서 제시한 예에서 '학력차별'이나 '비정규직 차별'이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말이다. 그것은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더 많은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점을 인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편 남녀 출생성비의 불균형과 같이 남녀가 공동으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문제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출산장려운동'을 펼치라는 비열한 남성만 아니라면, 없어진 듯 하면서도 심지어 여성에게조차 강하게 남아 있는 남아선호의식을 극복해야 한다. 만약 비열한 남성이 지적하는 것처럼 '저출산'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면 저출산을 일으키는 사회문제에 대응하거나 출산을 지원하는 정책을 요구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남녀평등의 문제를 남성과 여성의 대결적 구도로 생각하거나 그런 식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가족부나 여성단체들도 많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지만, '여성문제'라면 무조건 '여성들이 더 많이 가져가려는 수작'으로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필수적인 부분이라 생각한다.

    말 그대로 '성 격차'에 관한 '보고서'를 보라.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으로 인정할 수 있든 없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 격차에 관한 종합적 상황을 매우 객관적으로 제시한 수치들이다. '남녀평등 세계 꼴찌수준'이라는 자극적인 언론보도에 마음 쓸 필요도 없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그 수치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고, 수치들이 나타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내놓는 것이다.


    [ 보론 ]

    이 글을 작성하고 나서 '세계성격차보고서'를 비판하는 시각을 소개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사의 관련내용만을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한국이 조사대상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한)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국 여성이 가정 내에서 가지고 있는 경제권과 주택 구입, 자녀 교육 등에 대한 발언권 등 한국적 특성을 무시한 조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겨우 두 번째인 WEF 조사가 지역적 특수성을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주로 평가하다 보니 일본(79위) 등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하위권에 그쳤다. 국민소득 등 경제 규모를 전혀 반영하지 않아 '삶의 질'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사원문보기, 중앙일보 2006. 11. 23. 최지영 기자 choiji@joongang.co.kr)

    아울러 이 기사를 소개한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해 볼 만한 댓글 의견이 있었다.

    진짜 사회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거 같아요. 성평등이란 남자의 사회활동과 여성의 가사활동이 똑같은 평가를 받는것이 성평등입니다. 그런데 사회활동을 성평등의 기준으로 삼다니요..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1위를 하였는데 이는 필리핀 여성의 비참한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필리핀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저속득층의 남성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여성이 가사경제를 부담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착취구조로 대표적인 성차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사회경제 활동에 참여하므로 아시아 1위의 성평등 사회다라는 결론을 내리네요. 얼마나 커다란 아이러니인지. (Daum 닉네임 '당첨'님의 의견)

    기사와 댓글의 비판적 시각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가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유럽이나 북미의 선진국들 위주의 사회적 가치와 현실을 기준으로 평가하였으며, 지수산출의 근거자료도 세계 여러 나라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기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WEF가 내놓은 보고서를 '잘못된 결과'로만 본다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국가들과의 '순위'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그렇다고 국제기관에서 내놓은 보고서의 국가순위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한계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내용들을 뽑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의 경우를 소개한 댓글이 사실이라면, 이는 WEF 보고서의 심각한 오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WEF가 제시하는 것은 '성 격차의 지수와 국가순위'이지 그 국가의 '실질적 남녀평등의 상황과 국가순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그것은 일차적으로 필리핀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므로 '필리핀(또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순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제외한다면, 요컨대 제한되고 부족한 자료에 따른 결과일 지라도 그 범위 내에서 우리는 WEF가 내놓은 수치들을 우리의 실질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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