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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원실 풍경'에 관한 대화
    Essay 2006. 11. 30. 14:58

    * 이 글은 미디어몹 에오윈님의 글 '민원실 풍경'에 댓글을 남기신 윤현식님과 대화를 하기 위한 글입니다. 대화의 일부이므로 에오윈님 글의 댓글로 남겨야겠지만, 분량이 많을 것 같고 또한 이 자체로 에오윈님의 글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 싶어 부득이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제가 윤현식님께 성급하다고 말씀드린 것은 결코 글을 대충 읽으셨다거나 윤현식님이 갖고 계신 생각이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윤현식님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지 스스로 잘 표현하고 계시고 그 생각은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윤현식님의 생각을 '오해'라고 하는 이유는, 윤현식님이 '에오윈님의 생각'을 충분히 살피지 않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는 것'과 '글쓴이의 생각을 살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그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작곡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살피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을 들으면 자신만의 느낌으로 그 음악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사람'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령,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은 곡조가 무겁고 슬퍼 마치 '실연의 아픔'을 표현한 것 같지만, 실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순간 기쁨의 감정이 북받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애절한 감정이 뒤섞여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곡은 서정성이 너무 강해서 그냥 '슬픈 노래'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만약에 '음악을 듣는 데 있어 반드시 작곡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해해야 하느냐'라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냥 듣는 이의 감상에 맡겨버리면 되기 때문이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시 작곡가의 생각과 느낌을 알지 못해 전혀 엉뚱한 감상을 하게 되어도 말입니다.

    그러나 '글(말)'은 다릅니다. 아무리 글을 세심하게 읽었어도 글쓴이의 의도나 참뜻을 오해하면 차라리 읽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글을 읽는 경우만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적어도 음악을 듣는 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윤현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신문을 읽을 때조차 '그냥 읽지 말고 행간을 읽으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에오윈님이 하신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편견이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윤현식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편견은 어떤 상황에서도 편견일 뿐이다. 사람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되니 제발 고쳐라!'라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편견임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현실의 삶'을 이해하신다면 오해는 쉽게 풀릴 것이라 여깁니다.

    저도 일을 하며 많이 겪어 보아서 압니다만, 민원실의 풍경은 실제로 그렇습니다. 민원업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나 민원인이나 참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 부딪힙니다. 사람들은 보통 "민원업무 담당자라면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그 말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집니다.

    가령 법원의 종합민원실 같은 곳도 그렇습니다. 도저히 해줄 수 없는 일을 아무리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도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금 내는 국민이니까 당연하다는 듯 화를 내고 모욕을 줍니다. 그 밖에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을 겪는 기분이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오윈님은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면 '편견'이 든다고 했지만, 저라면 솔직히 '욕'부터 나올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민원업무 담당자는 친절해야 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편견인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민원업무 담당자들의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일찍이 '대사관녀'가 아니라 '법원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싸가지 없는' 법원여직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업무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민원인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은 채 한 마디 뱉어 버리고 말고, 나이 드신 분이 잘 알아 듣지 못해 미안한 듯 다시 물어보면 짜증을 내는 그 '법원녀'를 보면 법원에 불을 질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업계에서 그 '법원녀'의 별명도 '싸가지'였으니 말하자면 '공인된 불친절의 여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이 불친절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직원에 버금가는 다른 싸가지 없는 남자직원과 비교를 해보았을 때 그 여직원이 좀더 심한 증오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저조차도 그런 경향이 있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아마도 '여성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말하자면 남녀를 떠나 싸가지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욕을 한 건 똑같았지만, 여직원에 대해서는 '무슨 여자가 저 모양인가'라는 생각을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담당자의 성별에 관한 이 미묘한 차이는 실제로 민원인들에게서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것은 마치, 검찰청에서는 직원들이 불친절해도 스스로 온순해지던 민원인들이 법원에 와서는 주인행세를 하며 큰소리를 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법원이 그러한데 구청이나 동사무소라면 더욱 가관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구청, 동사무소에도 업무에 관련된 지식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불친절한 공무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민원인'의 행태도 도저히 그들이 '친절함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사관녀'에 대한 에오윈님의 생각도 그런 의미에 닿아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국군포로에 대한 그 여직원의 대응은 그 자체로 보았을 때 대단히 잘못된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르거나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에오윈님이 단 1%일지라도 여성에 대해 더 많이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공격의 느낌을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하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여직원이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 연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윤현식님은 전후사정이 필요한가라고 물으셨는데, 당연히 필요합니다. 이번 사법고시 면접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여 불합격된 응시생은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면접위원이었던 검사였는데도 말입니다.

    저도 그렇고 에오윈님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차디찬 멸시를 안겨주고 대사관녀에게는 격려의 박수와 따뜻한 응원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민원업무 담당자는 친절해야 한다"는 일반적 인식에 가려진 일상적 현실과 그 현실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윤현식님께서 그 점을 이해하셨다면 '글을 지우라, 수정하라'는 심한 말을 하실 수는 없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해'를 하고 계시다는 것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견을 갖고 오해를 합니다. 저도 그렇고 에오윈님이나 윤현식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에오윈님은 일을 하면서 편견을 가질 때가 많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따뜻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친절의 여신'까지는 모르겠지만 '불친절 마녀'는 아니실 겁니다.^^;; 윤현식님도 제 생각에는 잠시 오해를 하셨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코 나쁜 의도를 갖지 않고 흔치 않은 분노로 진지하게 문제를 대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제가 중재자가 된 것처럼 돼버렸군요.
    혹시라도 제가 시덥잖게 나서서 말씀드린 부분이 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들끓듯이 일었던 마음이 가라앉아 평안함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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