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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주사(將進酒辭)와 하일대주(夏日對酒)
한글날을 맞이하여 세종대왕릉을 참배하고 시 한수를 읊어 달라는 조선일보 기자의 부탁에 엉뚱하게도 장진주사를 읊은 외국학자의 이야기 때문에 한 가지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똑같이 술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너무도 다르게 마셨던 두 사람에 대한 일이다.

한 사람은 그 외국학자가 암송한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남긴 송강 정철이요, 다른 한 사람은 단순히 '실학자'를 넘어 시대 속에서 민중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자 했던 조선의 대사상가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그가 남긴 수많은 저작에서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는 민중의 고통과 그들의 처연했던 삶을 노래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일대주(夏日對酒)이다.

송강(1536-1593)과 다산(1762-1836)은 2백년이 넘는 차이를 두고 살았지만, 조선왕조에서 벼슬을 했던 사대부 집안의 사람들로서 이른 바 '선비'라고 불려지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같은 '선비'라도 이들의 일생은 참으로 달랐다. 한쪽은 권력욕으로 가득차 백성의 삶 따위는 아랑곳 없이 임금에 대한 사랑만을 노래했다면, 다른 한쪽은 조선의 퇴계사상을 뒤흔들 만큼 사상적 업적을 남기면서도 민중의 고통에 눈물짓는 삶을 살았다.

그들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술을 마시며 남겼던 두 글은 두 사람을 훌륭하게 비교해준다고 생각한다.

송강은 술에 취해 이렇게 노래했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셈하면서 무진 먹세그려


그리고 그로부터 200년 뒤에 다산은 이렇게 노래했다.

생각하면 가슴 속이 끓어 오르네
술이나 들이켜고 참된 것으로 돌아가자.
...
두어라, 말아라 술이나 마시자
백병 술이 장차는 샘물같이 되리라
...
깊이깊이 생각하니 애간장이 타들어
부어라 다시 또 술이나 마시자


송강의 것은 장진주사의 앞 부분만을 적은 것이고, 다산의 것은 길고 긴 하일대주의 각기 다른 곳에서 끝맺음을 하는 세 부분을 모아 본 것이다.

우선 송강의 노래는 참으로 세련되고 멋들어져 있다. 사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건 그의 문학적 재능만큼은 확실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에 비한다면 다산의 노래는 마치 술꾼의 노래처럼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앞뒤 내용을 모두 생략하고 술에 관한 부분만 옮겨 적었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그냥 대책없이 퍼마시자는 것이니 우아하고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듯 술을 마시는 모양만을 본다면 송강의 것이 훨씬 아름답다.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글을 쓸 때 왜 술을 마셨는가이다. 송강이 장진주사를 지은 시기는 동인의 탄핵을 받아 벼슬을 그만 두었을 때이다. 즉 낙향하여 자신의 처지를 술로 달래며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송강이 장진주사를 지은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 임금을 사모한다는 사미인곡을 지어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고 정여립 등을 역모로 몰아세우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나중에 다시 귀양살이를 하게 되자 속미인곡을 지어 바치며 일신의 영달과 안위만을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삶과 죽음을 오가는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그에 비해 다산은 어떠한가? 그가 지은 하일대주는 한자로 1000여자가 넘는 장문인데 그 내용이 모두 당시의 처연했던 민중의 삶과 그런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회상을 노래한 것이다. 다산은 그런 용인할 수 없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며 술을 마셨다. 문학적인 평가와 비교는 접어두더라도 이 얼마나 다르고 다른 생각이란 말인가.

다산에게 있어 꽃 꺾어 셈하며 마시는 풍류는 그야말로 사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는 술을 퍼마시는 것 이외에는 울분을 달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장진주사이든 하일대주이든 고작 술을 마신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두 사람의 생각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 송강과 다산의 차이일 뿐이겠는가.

다산의 하일대주를 옮겨본다.

1

임금이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말하자면 부잣집 영감 같은 것

영감 밭이 일백 두락이고
아들 열이 제각기 따로 산다면

당연히 한 잡에 열 두락씩 주어
먹고 사는 형편을 같게 해야지

교활한 녀석이 팔구십을 삼켜버리면
못난 자식은 곳간 늘 비기 마련이고

교활한 녀석이 비단옷 찬란할 때
못난 자식은 가난을 괴로와하네

영감이 눈으로 그 광경 보면
불쌍하고 속이 쓰리겠지만

맡겨버리고 직접 정리를 않았기에
못난 자식은 동서로 뿔뿔이 유랑하네

똑같이 받은 뼈와 살인데
부모의 사랑이 왜 이다지 불공정한가

근본이 무너져버렸기에
만사가 따라서 꽉 막힌 것이지

한밤중에 책상을 치고 일어나
탄식하며 높은 하늘을 본다네

2

많고 많은 머리 검은 자들
똑같은 나라 백성들인데

마땅히 무엇인가 거두어야 할 때면
부자들을 상대로 해야 옳지

어찌하여 피나게 긁어가는 일을
유독 힘 약한 백성에게만 하는가

군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이다지 모질게도 법률을 만들었나

일년 내내 힘들여 일을 해도
제몸 하나 가릴 길이 없고

뱃속에서 갓 태어난 어린 것도
백골이 진토가 된 사람도

그들 몸에 요역이 다 부과되어
곳곳에서 하늘에 울부짖고

성기까지 잘라버릴 정도니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호포문제도 오랜 논의 끝에
제법 평등한 안을 세워

작년에 평양감영에서
겨우 몇십일 시험하다 말았다네

만인이 산에 올라 통곡하거니
무슨 재주로 왕의 말씀 선포하리

먼 곳 가려면 가까운 데서 시작하고
소원한 자 다스리려면 가까운 자부터 해야지

어찌하여 고삐와 굴레를 가지고
야생마부터 먼저 길들이려 드는가

놀라 손떼는 것은 물이 끓기 때문
소기의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랴

서쪽 백성들 오랜 세월 억눌리어
열 대를 두고 벼슬 한 장 없으니

겉으로야 공손한 체할망정
가슴 속엔 언제나 사무친 원한

왜놈들 먼저 나라 삼켰을 때
의병이 일어나 활약했지만

서쪽 백성들은 수수방관했는데
그렇게 갚은 것 원인이 있어서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속이 끓어 오르네
술이나 들이켜고 참된 것으로 돌아가자

3

농가엔 반드시 식량을 비축하여
삼년이면 일년치를 비축하고

구년이면 삼년치를 비축하여
곡식 풀어 백성 먹여 살리는건데

사창법이 한번 문란해지자
만 목숨이 딩굴며 구슬피 우네

빌려주고 빌리는 건 양쪽이 다 원해야지
억지로 시행하면 그건 불편해져서

온 땅을 통틀어도 고개만 저을 뿐
빌리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네

봄철 좀먹은 쌀 한 말 받고
가을에 온전한 쌀 두 말을 갚는데

더구나 좀먹은 쌀값 돈으로 내라하니
온전한 쌀 팔아 돈으로 낼 수 밖에

남은 이익은 교활한 관리 살찌워
한번 벼슬길에 천 두락 논이 생긴다네

쓰라린 고초는 가난한 자에 돌아가니
휘두르는 채찍질에 살점이 떨어진다

큰 가마, 작은 솥 모두 다 가져가고
자식은 팔려가고 송아지마저 끌려간다네

군량미 비축한다 말도 말게나
그 말은 교묘하게 둘러맞추는 말일 뿐

섣달 그믐 임박해서 창고문 닫아 걸고
새봄도 되기 전에 곳간이 바닥나니

쌓아 둔 기간은 겨우 몇 달 뿐이요
일년 내내 창고 속은 텅텅 비어 있는 걸

군량미 조달할 일 불시에 생기는데
어찌하여 제때에 대비할 수 있겠는가

농가 양식 대준다는 그 말도 하지 말아라
지나치게 사랑을 베푸는 소리로세

자식들이 제각기 분가를 하면
부모로선 넌지시 저희들 하는 대로

헤프거나 아끼거나 저들 성격에 맡겨야지
죽 쑤어라 뭘해라 간섭할게 뭐라던가

부부끼리 상의해서 하는 것을 좋아하지
부모의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네

상평의 법이 원래 좋았는데
아무런 까닭없이 버림을 당했으니

두어라, 말아라 술이나 마시자
백병 술이 장차는 샘물같이 되리라

4

해마다 춘당대에서 과거시험 보이는데
수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서 겨루니

눈 밝은 이루가 백명 있어도
낱낱이 감시할 수 없는 일이지

되는 대로 적당히 채점해 버려
당락은 오로지 시관 손에 달렸다네

유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모든 사람이 다 쳐다보기 마련이지

법을 깨고 요행심만 길러
온 세상이 모두 미친 듯하다네

지금 와서 식자들 말로는
옛날 변계량을 탓한다네

과시의 품격이 원래 비루해
끼친 해독 크고 넓어 엄청나구나

마을마다 앉아 있는 선생들이
한과 당의 것은 가르치지 않고

어디서 온 백련구인지
읊고 외우는 소리 방안에 가득하고

항우와 패공의 옛날 고사만
지루하게 쓰고 또 쓰고 한다네

강백은 큰 주둥이 맘대로 놀리고
노긍은 창자에서 묘한 말만 뽑아낸다

한평생을 그 짓만 배웠지
소동파 황정견도 엿보려 들지 않아

한 마을의 우두머린 될지 몰라도
시체문도 어두워 캄캄하다네

대대로 이름 한번 날리지 못하건만
그래도 농사일은 하지를 않네

문자래야 아직 미개 상태였지
어찌하면 대나무 만 그루로

천 길 되는 빗자루를 만들어
쭉정이 먼지 따위 싹싹 쓸어서

한꺼번에 바람에 날려버릴까

5

산악이 영재를 만들어낼 때
씨족을 가려서 만들 리 없고

한 가닥 도기가 반드시
최노의 뱃속에만 있으란 법 없지

솥은 솔발이 뒤집혀야 좋고
난초도 깊은 골짝에서 나는 법

위공은 비첩의 소생이었고
희문도 개가녀 아들이었으며

중심은 먼 변방에서 났지만
지모가 모두 세상에서 뛰어났거늘

어찌하여 등용 길이 그렇게 좁아
수많은 사람들 뜻을 펴지 못할까

오직 제 일골만 수용을 하고
나머지 품골은 종처럼 대하기에

서북 사람들 늘 얼굴 찡그리고
서얼들은 원통해 통곡 소리 드높네

당당한 수십 가문이
대대로 국록을 먹어왔는데

그 중에서 패가 서로 갈리어
엎치락뒤치락 서로 죽이며

약자의 살을 강자가 먹고는
대여섯집 남아 거드름 떠는데

경상도 그들이 다하고
악목도 그들이 다하고

후설 맡은 자도 그자들이고
이목 노릇도 그들이 다하며

모든 관직도 그들이 다 해먹고
그들이 나서서 옥사도 살핀다네

하시골 백성 아들 하나 낳아
빼어난 기품 난곡 같고

팔구세 되도록 자라서는
지기가 가을철 대나무 같아

아비 앞에 꿇어앉아 묻기를
제가 지금 구경을 다 읽고

경술이 누구보다 으뜸이오니
홍문관에 들어갈 수 있겠는지요

아비 말이 너는 지체가 낮아
임금을 곁에서 돕는 일은 당치 않은 일

제가 지금 큰 활을 당기고
무예가 극곡과 같으니

그러면 오영의 장수나 되어
말 앞에다 대장기를 세워보렵니다

아비 말이 너는 지체가 낮아
장군 수레 타는 건 꿈도 못 꿀일

제가 지금 관리 사무를 배워
공황의 뒤를 이을 만하오니

그냥 고을살이 인끈이나 차고
죽도록 고량진미 즐기오리다

아비 말이 너는 지체가 낮아
순리도 혹리도 너에겐 상관 없는 일

자식놈 그제서야 노발대발 하면서
책이고 활이고 던져버리고

저포놀이와 강패놀이
마조놀이와 축국놀이에

허랑방탕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시골구석에 늙어 파묻혀버리지

부호 집안은 자식 하나 낳아
헌걸차기 천리마 같고

그 아이 팔구세가 되어
예쁘장한 옷을 입고 다니면

객들 말이 너는 걱정없다
너희 집은 하늘이 복 내린 집이라

네 벼슬도 하늘이 정해놓아
청관 요직 맘대로 할 수 있는데

부질없이 헛고생 해가면서
글공부 매일 같이 할 필요 없네

때가 되면 좋은 벼슬은 저절로이니
편지 한장 쓸 줄 알면 족하다

그 아이 깡충깡충 좋아라고
다시는 서책을 보지도 않네

장기 바둑 쌍륙놀이에 빠져
허랑하고 방탕하여 재목되지 못하건만

절차 따라 금마 옥당 오른다해도
먹줄 한 번 못 맞아본 나무가

어떻게 큰 집 재목 될 것인가
두 집 자식 다 자포자기로

세상천지에 어진 자가 누가 있을까
깊이깊이 생각하니 애간장이 타들어

부어라 다시 또 술이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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