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발언에 대해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구속수사를 결정하려 하자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지휘권을 최초로 발동했다. 이에 대해 검찰총장은 장관의 지휘권 수용을 유보하는 입장을 보인 가운데 이를 둘러싸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조직 사이의 대립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또다시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파괴"라고 하면서 들고 일어나고 검찰은 마치 검찰의 독립성이라도 침해받은 듯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법무부장관의 지휘권발동에 반대하는 입장의 논리를 접하다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이상한 것은, 법무부장관의 결정을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천정배 장관의 결정이 비정치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검찰과 한나라당이 천정배 장관의 결정을 '정치적'이라고 매도하면서 마치 자신들은 비정치적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정배 장관의 판단과 결정이 당연히 '정치적'이듯이 그에 반대하는 검찰과 한나라당 역시 매우 '정치적'이다.
그럼 이 사태에서 법적인 것은 없는가?
검찰과 한나라당은 마치 자신들이 법의 논리에 충실한 것처럼 행세하고 천정배 장관의 판단을 정치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실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천정배 장관의 불구속수사 의견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인권보장원칙을 합당하게 풀어 낸 법적 판단인데 비하여 검찰과 한나라당의 주장은 안보법체제에서 유지되어 온 정치이데올로기적 논리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검찰과 한나라당의 주장에는 전혀 법적인 구석이 없다. 특히 한나라당은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파괴"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왜 파괴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설명이 없다. 오히려 쟁점은 "인신구속의 원칙"인데 한나라당은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 파괴"만을 부르짖고 있고, 검찰은 "장관은 어디까지나 정치인"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그들에게는 법적 논리가 전혀 없다.
이 사태의 쟁점은 천정배 장관의 정치적 신념이 어찌되었건,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에 따라 처벌을 하건 안하건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인신구속원칙에 대한 판단문제이다.
일반인의 경우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이 있기 때문에 구속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 시점의 논란은 국가보안법과는 무관하다. 물론 국가보안법 문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태의 가장 중대한 핵심은 국가보안법 적용의 당부를 떠나 인신구속의 원칙에 관한 것이고, 천정배 장관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법적 판단에 따라 검찰의 무분별한 구속수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니 법적 논리를 가진 법무부장관의 정치적인 의도보다 군부파시즘 체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푹 절어있는 한나라당과 검찰의 정치적 의도가 더 문제이다. 특히 검찰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평상시에는 검찰이 인권보장기관이라고 홍보를 하면서 정작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인권보장원칙의 논리를 전혀 들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이건 검찰공무원이건 그들이 공부했던 시험과목에는 헌법도 있고 형사소송법도 있으니 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
법무부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장관이 밝힌 인신구속원칙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일이다. 쉽게 말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하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빨갱이 교수는 그런 거 필요 없다"는 것을 법논리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안하는 것이 좋다. 법률용어를 섞어 아무리 풀어내려고 해도 그것은 곧바로 위헌의 정치적 상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