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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학자의 세종대왕릉 참배기사를 보고Essay 2005. 10. 9. 15:55
어쩌다 보니 한글날을 맞이하여 나오게 된 조선일보의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우리의 영웅"이라는 기사인데 오랫동안 한글을 연구해온 독일과 일본의 학자가 세종대왕릉을 참배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웃음이 나오는 기사였다.
조선일보, 세종대왕은 우리의 영웅, 2005. 10. 7.
먼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선일보 또는 조선일보 기자가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기사를 내는 것이야 그들의 자유이겠지만, 알다시피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한글 사랑과는 전혀 무관했고 지금도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신문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고인이 되신 교육자이시자 한글학자이셨던 이오덕 선생께서는 우리 말과 글을 바로 쓰기 위해 여러 훌륭한 책을 쓰셨다. 그때 선생께서는 잘못 사용하는 수많은 표현들을 한겨레 신문에서 뽑았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한겨레 신문이 그나마 낫고 다른 신문은 바로잡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한글 사랑과는 전혀 무관했던 대표적인 신문에 조선일보가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신문이 "세종대왕은 우리의 영웅"이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한계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기사의 내용과 "세종대왕은 우리의 영웅"이라는 기사제목은 어딘지 모르게 정말 거슬린다. 노년의 번듯한 두 외국학자가 수십년 동안 한글을 연구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세종대왕을 스승으로 여겨 존경하는 마음으로 고개 숙이는 것을 보면서 하필이면 세종대왕을 "우리의 영웅"이라고 했는지... 참으로 감수성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종대왕은 우리 민족의 영웅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왜 영웅인가를 생각해 보자.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말과 글을 배우지 못해 억울한 일이 있어도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백성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다. 한글이 우수하다라는 것 이전에 한글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아울러 한글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외국의 학자가 와서 고개를 숙였다고 해서 자랑스러운 마음에 세종대왕을 영웅이라 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세종대왕을 영웅으로 느끼는 이유가 정말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기자와 외국학자의 어이없는 문답이었다. 기자는 세종대왕릉을 참배한 독일의 삿세교수에게 좋아하는 시 한수를 읊어 달라고 했는데, 삿세교수는 그 유명한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를 암송했다고 한다. 기자는 그 부분을 기사에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였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도 확실히 우리 문학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글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습기 짝이 없다. 송강 정철은 세종대왕 시기의 인물은 아니지만, 그가 한글에 담겨진 고귀한 뜻을 털끝만큼이라도 알았는지 의문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했던 인물이 한때 낙향해 멋들어진 정자에 앉아 자신의 처지만을 비관하며 술로 소일할 때 지었을 장진주사 따위를 세종대왕릉 앞에서 암송하다니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수십년을 연구한 학자라는 면에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대단한 일인 양 그대로 기사를 쓰는 기자는 말에 무엇 하겠는가.
종이로 된 신문을 읽고 있었다면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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