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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인 문제'의 본질Essay 2006. 4. 6. 17:13혼혈인 문제의 본질
하인즈 워드의 한국 방문으로 우리 사회의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혼혈인들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사회의 관심을 반기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인즈 워드의 출국과 동시에 끝나고 말 일시적인 관심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하인즈 워드의 금의환향을 반갑게 여기면서 그의 성공을 통해 혼혈인들의 기대가 조금씩이나마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그러나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암울’하다. 혼혈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하인즈 워드로 조성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경험에 의한 확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혼혈인에 대한 관심’ 자체가 갖고 있는 성격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번 일이 ‘성공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 드러나진 않지만 혼혈 ‘한민족(한국인)’에 대한 관심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일에서 ‘성공한 한민족의 핏줄 이야기’라는 성격을 제거하면 애초에 ‘사회적 관심’ 따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까지 잘못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즐거워했고 특히 한국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과 감동이 곧바로 잠재적 인식으로 굳어져 어떤 문제를 판단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된다면 처음에 느꼈던 기쁨과 감동은 그야말로 자아도취의 환상이 되고 말 것이다. ‘혼혈인’을 차별하지 말고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자고 하지만 이 말이 모든 혼혈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있다.
실제로 이번 일을 통해 그나마 사회적 관심을 받는 혼혈인은 아메라시안(Amerasian)이라고 불리는 미국인 아버지를 둔 혼혈한국인들일 것이다. 물론 꼭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백인혈통의 혼혈이 사회적 관심을 더 받을 것이며, 또한 백인혈통이 아니더라도 강대국 국적의 혼혈이 차별적 대우를 덜 받을 것이다. 이들에 비한다면 코시안(Kosi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떨까? 아버지가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에서 온 보잘 것 없는 노동자라면 이들은 그나마 한줄기 사회적 관심을 받기 위해 그쪽에서도 영웅이 탄생하기를 기도하며 다음을 기약해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여기서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경우가 있다. 주로 어린이이거나 미성년자일 것으로 생각되는 ‘코시안’들 중에는 부모 가운데 한명이 한국인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즉 부모 모두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기사를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기사 자체는 물론 그런 주장을 하는 인권단체들을 성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대강 이런 것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무슨 혼혈인가. 불법체류자들이 혼혈인들에 대한 관심에 묻어가려는 수작이다. 불법체류자들이 한국 여성들을 임신시키고 아이들을 볼모로 자기 이익을 챙기려 들 것이다. 그러므로 혼혈인과 불법체류자의 문제를 엄격히 분리해서 적용해야 한다.”
확실히 그들은 ‘혼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혼혈인의 문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을 혈통이나 국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잘못이다.
혼혈인의 문제를 혈통이나 국적의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혼혈인은 우리와 다르게 생겼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니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심각한 오답이다. 혼혈인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같은 핏줄’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등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내국인에게만 인정되는 권리를 누리지는 못하겠지만, 설령 그들이 불법체류자이고 그들의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그들에게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혼혈인의 문제는 ‘평등의 문제’이다. 글자 그대로 피가 섞였느냐 안 섞였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혼혈의 문제를 평등의 문제로 보면, 비록 ‘혼혈인’은 아니지만 ‘혼혈인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 생김새로 인해 차별받는 사람들 말이다. 혼혈인이건 아니건, 한민족의 핏줄이건 아니건, 그들은 생김새로 인해 차별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다만 그것이 ‘혼혈인의 문제’로 나타났을 뿐이지 본질은 같은 문제이다. 그럼에도 혼혈의 문제를 끝까지 핏줄의 문제로 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스스로 우스운 꼴을 당하고 말 것이다. 끝내는 자신의 논리대로 핏줄이 섞였는지 안 섞였는지 ‘피검사’와 ‘족보검증’만 하고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하인즈 워드를 이야기하면서 혼혈인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는가? 그의 몸에 한민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하인즈 워드와 그의 어머니가 대한민국에서건 미국에서건 생김새로 인해 차별받고 고통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혼혈이 아니었지만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차별받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하인즈 워드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리고 그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성공을 일구어 냈다. 그러나 그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그가 받은 차별과 고통은 부당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인즈 워드의 성공을 계기로, 하인즈 워드와 같이 생김새로 인해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민족 구성원의 일원이니 우리가 민족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순혈주의까지 가게 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민족의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고작 인간 보편의 인권마저도 짓밟거나 외면하는 공격적이며 이기적인 그런 민족의식이라면 우리의 후손들은 훗날 그런 민족임을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흔히 좋은 의미의 민족주의와 나쁜 의미의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데, 우리에게 나쁜 의미의 민족주의가 있다면 바로 지금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국제결혼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소식에 머지않아 필리핀 혼혈인이 대통령이 되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혼혈인들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자고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불법체류 외국인과 그 자녀들은 “즐~”이라고 외친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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