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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운동과 여성부에 관한 단상
    Essay 2006. 12. 31. 10:35


    남성들이여, 분노가 필요한가?

    성매매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연말 회식모임에 돈을 지원하겠다는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의 계획으로 시끌시끌하다. 여성부의 이런 계획이 국내외로 구설수에 오르자 '돈'에서 '상품권'으로 바뀌긴 했지만, 도리어 사태는 그나마 비판의 모양새를 갖추던 사람들마저 점차 조롱의 대열에 합류를 하는 듯한 형국이다.
     
    그 대열에 합류해 조롱 하나를 더하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지만, 사실 나도 여성부의 계획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물론 사람들의 극심한 반발에 대해서 "성매매를 하는 것이 잘못되고 부끄러운 일이지 그런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로 취급받으며 지탄을 받아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나도 그런 의견에 부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내가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는 여성부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거나, 지탄받을 일을 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란 것은 순전히 여성부의 계획이 '보다 깊은 고민에서 비롯되지 않은 설득력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듯 조롱과 지탄을 쏟아내고 있고 나처럼 '동의할 수 없다'며 차갑게 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여성부의 계획은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유화적인 의도로 기획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연말의 어지러운 술자리에서 '성매매'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의식'을 갖고 그렇게 하지 말자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보겠다는 의도가 결코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외국의 유명하다는 언론들에 의해서 놀림감이 되고 결국 한국 남성들의 자존심과 명예에 상처와 모욕을 안겨주었다고 해서 분노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게 창피 당하는 일을 참아낼 줄도 아는 것이 '남자다움'이 갖는 미덕이라면, 본의 아니게 번지게 된 일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잘못'이라고 한다면, 이런 사태를 호재라 생각하여 악의적 공격을 일삼고 있는 승냥이들이 들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여성부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부 자체를 '먹잇감'으로만 여겨 온 승냥이들의 공격에 동의를 한 것은 더욱 아니다. 지금의 이 문제에 대해 '분노'가 필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아 들어야 한다면, 그저 '동의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이 아닌 '틈을 노린 악의적 공격'에 칼끝을 겨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의에 부합하고 민주주의에 다가서는 일이라 여긴다. 여성부의 동의할 수 없는 계획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보고서'의 한계, 그리고 진정한 의미

    해마다 여성인권, 여성지위, 성격차, 양성평등에 관한 각종 보고서들이 발표되면 소란이 생긴다. 이 보고서들의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순위'를 매기고 있다는 것이다. 각 국가별로 조사결과가 수치로 나왔으니 순위를 정하지 않더라도 순위를 정한 것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굳이 그런 의미 없는 일을 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순위'만 의식한 나머지 보고서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현실'에 관한 사실과 의미, 그리고 한계들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게 되기 때문이다.[각주:1] 물론 조사결과를 종합해서 알기 쉽도록 전하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거의 모든 보고서들이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한 순위'를 정하고 있고, 그것이 다시금 언론을 통하여 제한되거나 왜곡된 의미로 전달되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보고서에서 '순위'가 없어질 수 없다면, 그런 의미 없거나 비틀어진 평가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는 약간의 이성이 필요하다.

    한편 보고서의 문제는 '순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벽한 보고서'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보고서는 비판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비단 조사대상의 내용과 범위처럼 '자료의 적절성' 등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고서 전체나 그 일부 내용의 '목적'을 의심해 보아야 할 때도 있다.[각주:2] '보고서'에 대한 이런 한계들을 생각할 때, 순위에 집착하는 단순한 경우는 물론, 그보다는 좀더 나은 편이긴 하지만 '결과'지표에만 몰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보고서 또는 기타 여러 통계자료를 다루는 가장 훌륭한 자세는 그것을 구체적 현실을 파악하는 하나의 재료로 삼는 것이다. 보고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대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대화가 시작되어야 하는 순간에 칼을 뽑아 드는 어이 없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했다. 다시 말하지만 보고서는 구체적 현실을 파악하고 이성적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그 속에는 사실도 있을 수 있고 왜곡도 있을 수 있다. 알지 못했던 진실이나 해답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진실을 덮어버리려는 거짓에 속아 넘어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토대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다.

    여성인권ㆍ여성지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성운동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표되어 논란이 되었던 몇몇 보고서들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여성인권, 여성지위의 상황은 어떤 것일까? 최근의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6 세계성격차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06)에서처럼 정치ㆍ경제 분야에서 대단히 미흡하다는 결과도 제시되었고,[각주:3] 코지토님이 발굴하여 소개하신 기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를 통해 여성평등지표인 '성ㆍ제도ㆍ개발(GID)' 지수가 대단히 높게 나온 결과도 제시되었다.[각주:4] 얼핏 생각하기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사의 내용이나 범위가 다르므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문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은 이들 보고서 중 어느 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상반된 결과에 대하여 하나는 반드시 진실이고 하나는 반드시 거짓일 것이라는 '양자택일의 인식'에 있다.

    나는 이들 보고서의 내용이 결코 모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여성인권이나 지위가 괄목할 만큼 신장되어 정착된 부분도 있고, 아직 미흡하거나 격차가 유지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으로 종합해 볼 수 있다. 양자택일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여성인권 후진국"이라거나, 반대로 "대한민국은 이미 양성평등이 실현된 것을 넘어 여성우월국가"라는 생각은 보고서의 한계와 의미를 망각한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판단을 두고 양시론과 양비론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양자택일의 억지'보다는 구체적 현실과 이성에 가깝다고 여긴다.

    우리나라 여성인권과 지위의 현주소에 대한 내 개인적 생각은 엇갈린 보고서의 내용 그대로이다.[각주:5] 다른 국가와 순위를 비교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만을 놓고 보아도 과거에 비해 개선된 점들이 많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공적인 분야에서는 거의 양성평등을 실현했다고 여긴다. 물론 정치분야(특히 의회)와 같이 아직 대단히 미흡한 영역이 있고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격차[각주:6]를 좁혀 나가야 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직에 취임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는 등 향후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토대는 이미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야에서는 어떤 '조치'보다는 단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사적 영역에서도 과거에 비한다면 상당부분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개선해야 될 문제들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성과 양성평등에 대한 기본적이며 일상적인 인식에 있다고 본다. 과거에는 "여자이니까 안 된다"라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면, 현재는 오히려 "요즘 여자는 다 된다"라는 인식이 문제이다. 이것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안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려는 진정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결국 그런 인식이 내놓는 결론은 "이제는 여성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잘못된 인식의 바탕 위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거나 잘 보이지 않는 일상적 불평등이 보일 리 만무하다. 더불어 '비정규직 여성' 문제처럼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여성인권과 여성지위에 있어 많은 발전도 있었고 동시에 향후의 과제도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은 우리에게도 여성인권의 보장과 지위의 향상이라는 사회적 발전이 있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나라 '여성운동'이 이룩한 성과라는 것이다. 현대헌법이라면 하나같이 천명하고 있듯이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실현해야 될 가장 기본적인 사항 중에 하나라면 그동안 여성운동은 단순히 여성 스스로 권익을 찾아 온 것을 넘어 우리 사회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각주:7] 요즘의 사회 분위기에서라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비난이나 욕설을 듣기 십상이겠지만, 나는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같은 사회적 발전이 자랑스럽고 여성운동의 노력에 고마움을 느끼며 앞으로도 성원을 보내고 싶다.

    여성운동의 결실인 동시에 새로운 과제인 '여성부'

    2001년 1월에 있었던 '여성부'의 출범은 이러한 여성운동의 성과와 역량을 배경으로 일구어 낸 결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과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권운동'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인권운동 진영은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위해 오랫동안 온힘을 다해 싸웠으면서도 막상 그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여러가지 갈등과 대립을 겪었지만, 여성운동 진영과 여성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운동과 여성부도 똑같은 갈등과 대립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갈등과 대립이 권장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누구도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인권운동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겪어야 했던 갈등과 대립은 그들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새로운 과제를 인식하고 역할 정립을 하는데 나름의 '방향성'을 부여한 반면, 여성운동과 여성부는 그런 계기나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운동 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서로 협력하면서도 인권현안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대립할 수 있다는 '긴장성'이 있지만, 여성운동 단체와 여성부는 그렇지가 않다. 이는 '여성부=여성운동 단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보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성운동 단체가 '공무원화'된 것이 결국 여성부"라는 것이다.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이렇게 형성된 인식은 생각 이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번 사건만 해도 "여성운동 단체가 공무원으로 진출하여 세금으로 이벤트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데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번 사건이 본래 여성부가 예정하고 있는 활동범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각주:8] 그러나 목표로 하고 있는 사항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의 문제까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세금으로 운영되고 그것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의 하나인 여성부는 이 문제에 있어 더욱 엄격하고 신중해야만 한다. 그것이 비단 여성부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공격을 받는 '여성'부라면 더욱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제한하고 위축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적, 공공적 영역에서 설득력을 유지하며 여성운동 단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당당히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여성부에 기대되는 일이고 여성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운동'의 희화화 우려

    처음에 언급했듯이 여성부에 대한 승냥이떼들의 부당한 공격은 한참 어긋나고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여성부는 분명 그런 공격의 기회를 주고 고립을 자초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아무리 신중해도 이런저런 말들을 듣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운동 단체나 여성부가 무엇을 한들 욕을 안먹겠는가. "여성부 폐지 10만인 서명운동" 같은 허섭스레기 같은 운동은 발작의 기회만 엿볼 뿐이었지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부당함을 공감하는 입장에서도 가끔은 동의할 수 없는 '지나친 당당함과 고집'을 느낄 때가 있다. 보통은 '부당함에 공감만 하지 남자인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자책을 하는 편이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전철에 지긋하게 붙어 있어 별 감동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어쨌든 세뇌 당하다시피 하는 '간첩신고'나 '공익광고'만도 못한 이런 홍보수단을 고집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혹 그런 광고들처럼 '사람들이 동의하든 말든 결국에는 세뇌를 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각주:9]

    이번 사건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여성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전반이 더욱 희화화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여성'에 관한 일은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해도 무시하고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희롱을 일삼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희화화 되고 무시 당하는 것이 여성운동이 겪어 온 일이며 동시에 극복해 온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장난질의 빌미를 주지 않고, 엮이지 않으려는 노력도 꼭 필요하다. 아울러 '여성운동'의 이름을 내걸었다고 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목표와 수단이 항상 옳은 것이라는 고집은 버려야 한다.

    '성매매'에 대한 전환적 인식과 접근

    성매매에 관하여 개인적으로는 보통의 여성주의자들과 다르게 생각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금지되어 있는 성매매를 없애는 것이 여성부의 목표라면 그에 관한 여성부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정말 성매매를 없애는 것이 목표라면 나는 차라리 '접근방식의 전환'을 기대하고 싶다.
     
    이와 관련해 이번 사건을 두고 "여성부가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매매자(소비자, 가해자)로 인식한 결과"라고 하는 비판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여성부가 정말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여성부는 성매매가 발생하는 원인이 오로지 '남성'에게 있고, 따라서 그 해결도 남성에 대한 '계몽과 단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회문제를 너무 간편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설령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매매자인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데 있어서까지 그와 같은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반발이 없어도 계몽이 실효성을 발휘해 성과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힘든데, 반발을 불러 일으킬 것이 뻔한 계몽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성부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그에 관한 여성단체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아직 확인해보지 않았으나, 이번 사건이 여성부는 물론 여성운동 단체에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좀더 깊은 고민과 함께 겸손과 여유로움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잘못했으니 반성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이다. '외유내강'이야말로 여성성의 부드러움과 강함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1. 이는 비단 여성에 대한 보고서에 국한하지 않는다. '인권'이니 '행복지수'이니 하는 것들의 '순위'만큼 무의미한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구체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인권보장의 순위가 높게 나타난다고 해서 대단하게 생각하거나 부러워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서유럽이나 북유럽을 선망하고 있는 당신이 그 인권선진국들을 방문해 여기저기서 인종차별을 겪는다면 '순위' 따위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차별'이 '불법처형'보다 더 중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권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것이 더 시급한가"의 문제일 뿐이지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소개되는 방글라데시의 경우도 그렇다. 방글라데시 국민들에게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는 이유를 특유의 국민성이나 종교적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 방글라데시 국민(그 가운데 특히 여성)은 '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방글라데시의 현실에 관하여는 노바리님의 글「사이드 무나 : 21세기」를 반드시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일을 하다 추방을 당하고 모국에서 미디어운동을 하고 있는 사이드 무나 감독을 인터뷰한 글로서 방글라데시를 그저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예를 들면 미국 국무부에서 내놓는 인권보고서가 그렇다. 비정부기구(NGO)가 아닌 정부기관(GO)에서 조사발표하는 보고서이므로 '인권'을 자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압력수단으로 사용해 온 미국의 의도가 결부되기 쉽다. 본질적으로는 보고서 발표 자체가 압력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이 점을 지적하는 인권단체, 인권운동가들도 적지 않다. 다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보고서가 전혀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판적 시각과 평가를 전제로 했을 때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세계성격차보고서의 내용에 관하여는 이 블로그의「'세계성격차보고서'에 대한 왜곡된 반응」을 참조. 다만, 이 보고서는 조사대상국가의 '실질적 양성평등 수준'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격차의 상태'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접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격차수준이 낮다고 해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질적 양성평등의 수준은 각 국가의 보다 구체적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4. 경향신문,「우리나라 '여성평등' 세계4위」, 2006. 3. 8. 참고로 OECD 보고서의 결과를 전한 이 기사는 '더 이상의 양성평등이 불필요하다'거나, 나아가 '역차별'의 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근래에는 '여성부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선전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 그러나 WEF의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OECD 보고서 역시 우리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다분히 일반적이고 제한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본문으로]
    5. '상반되다', '엇갈리다'의 표현을 썼지만 사실 단정할 수는 없다. 우선 교육, 보건 분야에서 WEF 보고서와 OECD 보고서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고, 아울러 확신할 수는 없지만 WEF 보고서는 경제ㆍ정치 분야에 중점을 둔 반면 OECD 보고서는 사회ㆍ문화 분야에 중점을 두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내용과 범위의 자료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므로, 엄밀히 말해 이 두 보고서의 결과가 '모순'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본문으로]
    6. 어떤 영역에서 여성의 비율이 낮은 것을 두고 곧바로 '불평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격차'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차별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격차'는 분명히 불평등이지만, '양성평등'의 의미를 오직 '비율의 평등'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모든 차이를 불평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단, 그러한 '격차'는 형식적으로는 '평등하다'고 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7. 여성운동에 관한 오해와 편견들은 의외로 많다. 가령 여성운동을 '여성들이 하는 운동'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 정도는 그래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심각한 경우는 여성운동을 '여성들만의 이익을 위한 운동'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여성운동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런 경향을 비판하는 것과 여성운동이 갖고 있는 의미 자체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현실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사회주의가 갖고 있는 의미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여하간 여성운동은 결코 여성들만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 아니며,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 가운데 하나이다. [본문으로]
    8. 여성부가 출범할 당시부터 여성부의 관할사항에는 "윤락행위 방지"가 포함되었다. '성매매'에 관한 내 개인적 견해는 현행 제도와 일치하지 않지만, 과거의 윤락행위방지법에서부터 현행법에 이르기까지 성매매 행위는 금지되고 있으므로 "윤락행위 방지'가 여성부의 활동범위에 포함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참고로 성매매에 관한 필자의 견해는 이 블로그의 글「성매매와 여성인권」을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
    9. 이번 사건을 권력화된 여성운동가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지위강화를 위한 독선을 부리다 결국 벌어지게 된 해프닝으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에도 관료화의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처럼 권력지향형 여성운동가들의 폐단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다만, 관료화의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 폐지론'에 동의할 수 없듯이 권력지향형 여성운동가들 때문에 여성부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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