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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돌아가자
    Essay 2003. 6. 11. 02:42
    인터넷 한겨레신문 ‘오늘의 논객’ 6월 3일자에 게재된 강재준씨의 글을 읽고 쓴다. 강씨의 주장은 국가인권위원회를 두는 제도가 위헌적이라는 데에 있고, 그 근거는 (요약하자면)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수행해야 할 기본권 보장기능을 ‘헌법기관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강씨의 글에 대한 6월 9일자 김정훈씨의 반론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법학의 기초적인 지식마저 왜곡하였거나 혹은 무지에서 온 결과로서 논쟁의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이다. 특히 지난 국가인권위원회법 입법과정에서 인권위가 독립적 국가기관으로 설립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였던 검사들이 창의력을 한껏 발휘해 탄생시킨 ‘소속 없는 국가기구 위헌론’조차도 (비록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인권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 볼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 터무니 없는 근거로 인권위의 존재 자체가 위헌적이라고 하는 강씨의 주장에는 그저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근거가 빈약한 강씨의 주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글에서 나타나는 이중성과 헌법재판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다. 우선 강씨의 주장이 겉보기에는 인권위의 위헌성을 논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주장하려는 것은 인권위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인권위가 잘하는가 잘못하는가를 따질 필요도 없”이 “헌법재판소로 돌아가자”는 주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결국 강씨의 ‘인권위 위헌론’은 ‘인권위 무용론’을 주장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적 논리에 불과하며, 그의 주장을 압축하면 ‘헌법재판소가 있는 한 인권위는 무용하기 때문에 위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비약이 아니다. 헌법개정을 통하여 인권위를 헌법기관화 할 수도 있지만, 강씨의 주장이 일관성을 갖는다면 이미 헌법재판소가 있는 한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있는 한 인권위는 헌법기관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존재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다. 따라서 그를 향하여 인권위 위헌론을 반박하면서 합헌성의 근거를 제시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시간낭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있음에도 인권위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강씨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을 이해하면서 진실과 정의에 다가서려는 학문적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애써 그런 설명들을 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헌법재판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필자가 대학의 헌법강의 시간에 들었던 헌법재판소에 관한 한마디의 날카로운 지적을 들려주고 싶다. 바로 “굵직한 것은 합헌, 자잘한 것은 위헌”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통하여 쌓아온 인권보장의 업적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침해하는 ‘굵직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좀더 음미해 보면 바로 헌법재판소가 그 근본적이고 ‘굵직한 것’을 합헌결정으로써 유지존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어떤 정치적 성향도 갖지 않는다는 믿음은 오류다. 헌법이 정치적 또는 사회적 타협의 산물로서 그 자체가 정치성을 갖는데도 그것을 부정하는 믿음 역시 오류다. 이런 오류들이 뒤범벅 되어 헌법재판관들은 오로지 헌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이념과 지도원리에 따라 인권보장의 역할을 앞장서서 다해낼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맹목적 인식은 정말이지 터무니 없는 오류다.

    어떤 권력 어떤 국가기관이든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민주적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적 상식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이든 인권위든 그것이 헌법기관이든 아니면 불법단체이든 진정 ‘잘하는가 잘못하는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정치권력에 빌붙어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면서 민주주의를 말살시켰던 초헌법적인(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권력과 이에 항거한 수많은 사람들이 폭도와 불법단체로 내몰려 오랜 세월 동안 고통을 당해온 역사를 겪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이나 국가기관은 모두 수단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나 인권위도 모두 수단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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