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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Moscow Does Not Believe In Tears)



나는 지나간 옛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화제 속에 주목받으며 연일 관람객 동원수를 갱신하고 있는 최신작'을 보는 즐거움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옛 영화들 가운데에는 최신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재미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영화들을 만날 때마다 헌책방에서 좋은 책 한권을 골라 낸 것처럼 큰 즐거움을 느낀다.

블라디미르 멘쇼프(Vladimir Menshov) 감독의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Moskva slezam ne verit, Moscow Does Not Believe In Tears)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1979년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단지 '소련 영화'라는 이유 때문에 상영금지 상태에 있다가 80년대 후반쯤에나 해금이 되어 당시에는 화제 속에 개봉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이미 1980년에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이었는데도 상영을 못했다니 역시나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튼 옛 소련 시절에 만든 영화라고 하면 '재미없는 사회주의 홍보영화'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분류하자면 그냥 '멜로영화'이다.

모스크바에서 공장에 다니며 멋진 인생을 꿈꾸는 세 여성이 있다. 이들의 인생은 곧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한 여성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범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다른 여성은 성공한 남자를 잡아 '인생역전'을 꿈꾸며 결혼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여성은 남자에게 비참하게 버림받고 미혼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힘든 인생을 살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 여성의 인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이 여성은 거짓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았지만 힘든 인생을 인내하며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된다. 영화는 이 여성이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 유쾌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멜로영화'로 분류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멜로영화'라고 해서 부당하게 폄하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는 멜로영화치고는(?) 매우 '교훈적'이라는 생각이다. '삶과 사랑에 대한 태도' 또는 '여성에 대한 태도'에 관하여 차분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거기에 유쾌한 재미까지 더해 경쾌하고 낭만적으로 그려냈으니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매력적인 배우들에 대한 인상도 오래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주역을 맡은 베라 알렌토바(Vera Alentova)와 알렉세이 바탈로프(Aleksei Batalov)라는 배우가 인상 깊다.

카티아 역을 맡은 베라 알렌토바(Vera Alentova)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의 러시아에서도 흔히 쓰는 격언이라고 한다.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말 그대로 '모스크바에서는 눈물을 보이기보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은 이 말의 의미가 '비정할 정도로 인정을 베풀지 않는 모스크바 사람들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방인의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포들의 해석보다는 전자의 해석이 더 정확한 의미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에서 개봉될 때 제목도 <모스크바에서는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제목이 좀 촌스러워 보이기는 해도 '(울어봤자 소용없으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 그대로이다.

영화의 내용도 그런 뜻에 부합한다. 영화 속에서 카티아는 세 번의 눈물을 흘린다. 첫 번째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혼자 아이를 낳아 힘겨운 생활을 할 때에 눈물을 흘렸고, 두 번째는 유부남과 진실하지 못한 불안한 사랑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두 상황은 서로 다르지만 남성에 의한 진실하지 못한 사랑,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사랑이라는 비슷한 설정을 갖는다. 샴페인과 감미로운 음악('Kiss me much'라는 뜻인 그 유명한 'Besame Mucho'), 그리고 달콤한 말과 함께 이어지는 행동은 단지 성욕을 채우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카티아는 그런 사랑에 상처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세 번째의 울음은 앞의 경우와 다른 '진실한 사랑의 위기' 때문에 터뜨린 울음이지만, 여전히 눈물을 보이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사랑에 배신을 당하건, 방황을 하건, 또는 진실한 사랑이 떠나려 하건,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샤도 젊은 날의 카티아처럼 (자신이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샤의 항변은 설득력이 있다. 그 사람 자체가 아닌 사회적 지위와 같은 외적 조건을 보고 사랑을 하는 일에 카티아 자신도 피해자였으면서 결국 카티아도 사랑이 아닌 이런저런 선입견과 사회적 지위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진실하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남성이 입는 피해보다 여성이 입는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다. 남성은 성욕을 채우면 그뿐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비참하게 버려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카티아는 사회적 지위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진실한 사랑을 얻는다.

이 영화의 장면들은 대부분 기억에 남는 것들이지만 특히 소풍 장면과 카티아의 집 식탁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인상 깊다. 극단적이거나 지나치게 낭만적인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 멜로영화에 비하면 이 영화는 그래도 가장 현실적이고 유익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연인관계나 결혼생활에 관한 올바른 지침이 될 만한 것으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좋은 영화이다.


* 2006년 9월 10일 작성
* 2007년 7월 7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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