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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사직


국회의원직을 그만 두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사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국회법상으로는 '사직'이라 표현한다. 의원직의 사직은 국회법 제135조에 규정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35조(사직)

① 국회는 그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 다만, 폐회 중에는 의장이 이를 허가할 수 있다.
② 의원이 사직하고자 할 때에는 본인이 서명·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③ 사직의 허가여부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표결한다.

국회의원의 신분은 국가공무원법 제2조 제3항에 의한 '정무직 공무원'이므로,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의 자유의사에 의해 사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지만 사직의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 국회의원이 "사직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문서를 남겼다고 해서 곧바로 사직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국회의원 개개인이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이므로 그 직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신중하고도 분명하게 처리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제시한 국회법 제135조에 의하면, 국회의원이 사직을 하고자 할 경우 본인이 직접 서명하고 날인한 사직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제2항). 여기서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국회의장에게 직접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으로 국회사무처 의사국 의안과에 제출하면 된다. 즉, 의안과에 제출하는 것이 곧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제출된 사직서는 '의안'으로 다루어지게 되는데, 법률안과 같은 일반적 의안과는 다르게 취급된다.
 
국회가 회기 중일 때에는 토론 없이 표결에 붙여 의결한다(제3항). '토론'은 하지 않지만, 사직서를 제출한 의원이 사직이유에 대해 본회의에서 '진술'을 할 수는 있다. 반면에 폐회 중일 때에는 국회의장이 '허가'하는 것으로 사직의 효과가 발생한다. 이때 국회의장은 허가를 할 수도 있고, 다음 회기의 집회를 기다려 처리할 수도 있다. 만약 의장과 부의장 2인이 모두 궐위되어 의장의 직무를 행할 자가 없을 때에는 다음 회기의 집회 시까지 처리할 수 없다.

주의할 점은, 사직서가 회기 중에 제출되었더라도 회기의 만료로 폐회가 되었을 때에는 국회의장이 허가하는 것으로 사직의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폐회 중 국회의장의 사직을 허가한 때에는 다음 국회의 집회가 있는 때 즉시 본회의에 보고해야 한다.

의원직 사직의 법적 효력은 "회기 중 본회의 의결"이나 "폐회 중 국회의장의 허가"가 있을 경우에만 발생한다. 따라서 사직서를 제출하였더라도, 본회의 의결이나 국회의장의 허가가 있기 전에는 이를 철회할 수 있다. 철회는 일반의안과 달리 본회의의 의제가 된 때에도 철회를 위해 본회의의 동의를 요하지 않으며, 철회의 의사표시가 의장에게 도달하면 철회의 효력이 발생한다. 철회는 서면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구두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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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사직  (0) 2009.07.24
꼬리말 : 국회의원, 의원사직, 의원사퇴, 의원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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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담긴 공화주의

아침에 담배를 피우며 조선일보를 첫장부터 넘기며 보던 중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2009 한국의 모색-좌우를 뛰어넘다"라는 기획기사인 듯 싶었는데, "촛불집회로는 共和적 이상 실현 어려워"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촛불집회로는 共和적 이상 실현 어려워"

김우창 교수를 직접 인터뷰하지 않았으므로 그분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사원문에 있는 짧은 동영상을 보았을 때에 촛불집회의 한계 내지는 부정적 측면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맞는 듯 하다. 물론 촛불집회의 한계나 문제점을 이야기 했다고 해서 그 분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우창 교수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적으로 옳다고 적극 동의하기도 어려운 입장인데, 그 이유는 "공화적 이상 실현"의 책임을 촛불집회에만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질문에 한정된 답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조선일보의 기사가 김우창 교수의 생각을 왜곡하지 않았다면, 나는 김우창 교수의 생각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촛불집회의 현재적 한계와 문제점만을 바라 보았을 뿐 촛불집회가 갖는 긍정적 의미에 대해서는 한 푼어치도 쳐주지 않은 부당함이 있기 때문이다.
 
기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화적 이상 실현"에 걸림돌이 되어 온 것은 촛불집회가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공화국"이라는 말 자체가 쑥스러울 지경이고, 그래서 어느 헌법학자는 그 역사 속에서 공화국인 채 하는 정권들을 보며 '공화국 모독죄'를 신설해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아가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는 (정리 불가능한) 공화국 차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물음을 던져 보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몇 공화국인가? 현 정부는 지난 '좌파정권'과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 "제7공화국"이라 명명하고 싶을 지는 모르겠으나, 동의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제6공화국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현 정권은 "제6공화국 5기"가 될 것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다음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해도 별로 의미는 없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언제 공화국 같았냐는 게 문제다. 허무주의를 경계하지만 그만큼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면서 공화국 같지가 않았다.(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그게 어디 공화국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촛불집회는 공화적 이상 실현의 걸림돌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공화주의적 정치문화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김우창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촛불집회에도 한계와 문제점이 있고, 그런 지적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풀어나가야 할 '과제'에 속하는 것이지, 촛불집회 자체가 미래의 공화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한편, 촛불집회의 한계와 문제점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제기할 수 있는데, 김우창 교수는 인터뷰 기사에 게재된 동영상에서 지행합일 사상으로 인해 행동(실천)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의 잘못된 발로라고 보는 듯 하다. 아울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형태로 표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시 일리 있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완전하게 동의할 수는 없다. 김우창 교수가 말하는 유교적 전통의 습성인 측면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이 본질적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촛불집회가 반공화제적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공화제적 상황이란 사회구성원이면서 주권자 국민의 일원(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지 '개인'에게는 없다)으로 자각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권력집단이 결정하면 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억압적 상태를 말한다.

만약 이런 생각이 설득력이 있다면, 현재적 관점에서 "촛불집회로는 공화적 이상 실현이 어렵다"는 주장은 '왜곡'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앞뒤 잘라낸 그야말로 쌩뚱맞는 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완전히 배척해서도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촛불집회가 공화적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앞으로 공화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그때는 김우창 교수의 지적이 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김우창 교수 인터뷰 기사가 계속 떠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해가며 신문을 넘겼는데, 뒷 부분에 이르러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김대중 고문 칼럼, "좌파와의 전쟁"

글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앞에 있는 것은 인터뷰 기사요, 뒤에 있는 것은 칼럼이므로 '일관성'이라는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이것이 공식적으로 조선일보의 입장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비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공화적 이상 실현"이라는 주제를 담았던 신문이, 돌연 공화국 대통령에 대해 '좌파와의 전쟁'을 시작하라는 글을 동시에 담고 있으니, 나로서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일보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혼란을 느낄 독자를 위해 김대중 칼럼에 '편집자 주'라도 달아 놓았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우창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그래도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 있고, 주의 깊게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여겼지만, 김대중 고문의 칼럼은 단언하건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아이들 교과서에 '反공화주의적 생각'의 예시가 필요하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글을 추천하겠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앞서 얘기한 김우창 교수의 인터뷰 기사 제목을 그대로 빌리면 된다.
 
"김대중 칼럼으로는 공화적 이상 실현 어려워"

정치적 입장이나 생각,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여, 같은 사회구성원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삼는 국가는 영원히 공화국이 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민주공화국' 국민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김대중 고문의 주장에서 쓰이는 근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좌파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좌파가 집권했을 때 좌파의 발목은 누가 잡고 있었던가. (아참, 김대중 고문이 좌파집권시기를 공화국 정부로 보는지부터 확인해야 될 것 같다.)

지난 일 갖고 편을 갈라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김우창 교수가 말하듯 공화적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화에 걸맞는 합리적 체제가 필요하다. 그 체제의 기본은 "보다 너그럽고 관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진보진영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보수진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고문이 말하는 것이 과연 '공화'일 수 있는가? 그것은 독선과 아집의 주문일 뿐이고, 공화적 체제와 이상을 무너뜨리는 행위일 뿐이다.

공교롭게 같은 일자에 실려 미리 읽어 보지 못했겠지만, 김대중 고문에게 조선일보를 '열독'할 것을 권해본다.



꼬리말 : 공화국, 공화제, 공화주의, 김대중, 김우창, 조선일보, 좌파,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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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세상 at 2009.01.29 04:58  r x
말씀대로 "같은 날짜에 실려" 그랬나 봅니다. 여러 각도에서 나오는 의견을 골고루 실어주는 참 공평한 신문이군요. 어느 쪽 의견에 고개를 끄덕여줄지 판단은 독자들 몫이겠지요.
희한한세상 at 2009.01.29 05:01  r x
다른 한편으로 (김우창 교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하여) 저는 촛불집회가 공화주의 실현에 도움을 줄 도구인가 하는 질문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게, 광장에서 불 붙은 촛불이 인터넷 안으로 빨려들어가버렸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at 2009.02.28 17:20  r x
비밀댓글입니다
BlogIcon fides at 2009.02.28 22:10 신고 x
초대장 보내드렸습니다. 멋진 블로그 만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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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보편화(세계화) 현상



인권의 보편화(세계화) 현상


* 이 글은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국순옥 교수님(현 명예교수)의
 1997년 2학기 '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 강의의 일부분을 정리한 것임.





인권사상은 본래 서구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전통적인 '덕치사상'에서 인권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찾기는 어렵다. 더욱이 세계 제2차대전 이전까지 서양과 동양은 지배-피지배관계에 놓임으로써 물리적 폭력에 의한 직접지배의 객체였던 동양의 '식민지' 국가는 '인권관념'을 이야기할 아무런 역사적 소재가 없었다.
 
이후 지배의 방식이 '직접지배'에서 식민지 사회에 토착정부를 수립하여 막후 조정하는 '간접지배'의 방식으로 전환되었지만, 이러한 '신식민지' 국가에 대한 인권탄압은 직접지배의 식민지 시대보다 더 엄혹했다(예를 들면 베트남, 필리핀, 남미에서의 인권탄압).  따라서 인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더라도 토착정부를 매개로 한  간접지배로 인해 인권탄압이 자행된다면 인권문제는 헌법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 차원에서 구상해야 될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0~70년대에는 외국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였지만, 80~90년대에 외국정부와 노조는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며 역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같은 역압력은 한국의 값싼 임금에 따른 미국의 실업증가를 해소하기 위하여 한국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기 위한 압력이다.
 
80~90년대에 우리는 이처럼 외국의 직간접적인 지배의 희생양이 되어 왔지만 인권보장의 측면에서는 역으로 선진국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인권의 세계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우리 스스로 주도한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인도되었다는 측면에서는 역시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지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를 '인권의 부메랑 효과'라고 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속되어 왔다.


(1) 국제연합 인권선언

국제연합 인권선언의 작성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전후 승전국은 적대적 관계로 분열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권리규정이-기술적으로도-어렵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에는 자유권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회권에 대해서는 근로대중을 포함한 모든 인민의 생존, 생활을 보장하려는 사회주의 체제와 '보충성의 원칙'을 강조하는 자본주의국가간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다시말해 이념상의 차이로 인하여 엄청난 격돌이 있었으며 결국 자유권, 정치적 권리, 참정권에 관한 권리를 작성하였지만 모든 가맹국들에게 준수를 요하는, 즉 구속하는 것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인권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는 역사적인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2) 유럽에서의 인권

인권의 역사는 곧 유럽(동구권을 제외한 서독의 이남, 이서를 지칭함) 인권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유럽인권규약'은 주로 자유권을 중심으로 규정되었는데,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려는 인식하에 만들어져 구속력이 강하였다. '유럽사회헌장'은 사회적 생존, 생활(사회권)에 관한 규정으로서 경제, 재정능력의 차이로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므로 재량의 여지를 마련하여 제정되었다. 또한 프랑스에 인권재판소가 설치되어 규약위반국가에 대한 권리구제의 방안을 마련하였다. 인권보장의 역사는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개화되었다.


(3) 제3세계에서의 인권

세계의 양극화에 따라 자본주의국가를 제1세계라 하며, 신생사회주의국가를 제2세계, 여타 국가를 제3세계라 지칭하는데, 제3세계의 국가는 과거 식민지 상태에서 간신히 독립을 쟁취한 국가들이다. 제3세계는 인권보장의 전통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이 구속력이 없었기 때문에 인권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경제적 자립이 급선무이었으므로 외국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하려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그 결과 경제적 자립은 어느 정도 성취하였으나 인권문제가 대두되게 되었다. 여기서 인권상황을 검토하여 헌법해석에 도입할 필요성이 생긴다.


(4) 기본권 해석에 관한 발상전환의 필요성

오늘날 경제적 국경은 없어져 가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외국자본)의 토지취득제한과 같은 소유권의 제한은 국제적인 마찰의 소지가 있으며, 반면에 자본, 기술, 능력이 월등한 사람들만의 직업선택의 자유는 비난과 공격의 우려가 있게 된다.
 
상호주의 원칙을 도입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보완할 수 있는 체제, 제도의 필요성과 기본권을 창조적으로 해석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90년대 이전까지도 많은 진보적인 학자들은 특수성의 관점에서 인권의 보편성에 관한 주장을 부르주아적 관점이라 하여 매우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켜 왔으나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사회보장체계에 있어서 아직 배울 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유권과 관련된 보편성을 부정하여 붕괴되어 버렸다. 이제는 인권의 보편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인권의 체계적, 구조적 정립은 각 사회가 떠 맡은 역사적 과제이며, 이에는 타율적으로 들어 온 문화를 수호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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